내년부터 희생자 1인당 9000만원 지급...총 1만100여명 대상
제사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5촌까지 보상금 청구 가능
제주4·3희생자에게 국가 차원의 보상을 담은 4·3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과거사 사건 중 법원 판결이 아닌 국회 입법으로 피해보상을 해준 것은 제주4·3사건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희생자의 명예회복은 물론 4·3의 완전한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개정 법률안의 국회 통과로 빠르면 내년 3월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사망·행방불명 희생자 1인당 9000만원의 보상금이 균등 지급된다.
후유장애나 수형인은 장애정도와 구금일수 등을 고려해 9000만원 이하 범위에서 지급된다.
정부가 발표한 보상금 지급 인원은 1만100여 명, 총 보상액은 9600억원이다. 보상금은 생존 희생자(현재 111명)와 유족 결정 순으로 지급될 전망이다.
보상금의 상속순위는 민법에 따르되 4촌 이내 상속자가 없으면 희생자의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5촌까지 보상금 청구가 가능하다.
‘지연 이자’ 조항 신설에 따라 신청 접수 후 1~5년이 지난 후 9000만원을 받을 경우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를 적영, 지연 이자가 지급된다.
이 법률안은 검사의 직권재심 청구를 통해 4·3당시 군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수형인 2530명의 명예회복(전과기록 삭제)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보상금을 지급받아도 형사보상 청구를 할 수 있다.
제주지법은 4·3수형인 중 징역 1년의 경우 평균 1억3000만원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향후 판결을 통해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이 나면, 정부의 보상금(9000만원) 외에 차액인 4000만원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앞으로 희생자 유족들이 주소지 읍·면·동에서 보상금 지급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전담 창구를 설치할 예정이다.
법률안은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내리는 조항을 담았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이번 4·3특별법 개정은 제주4·3에 대해 국가공권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해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이 이뤄지게 됐다”며 “과거사 청산에 있어서 제주4·3이 모범사례가 되고, 추가적인 후속조치 역시 도민사회에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유족회에서 앞장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2000년 6월부터 지금까지 심의·결정한 4·3희생자는 사망 1만425명, 행방불명 3632명, 후유장애 196명, 수형인 286명 등 모두 1만4539명이다. 유족은 8만1106명이다.
한편 재일본 4·3유족회원은 929명, 재미국 유족회원은 104명 등 모두 1033명이다.
해외에 있는 희생자 유족들도 현행 민법의 상속기준에 따라 향후 재외공관을 통해 보상금 지급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키워드) 제주4·3사건이란
1945년 광복을 맞아 일본에서 귀환한 제주도민은 6만명에 이르면서 실직난과 생필품이 부족해 졌다. 여기에 콜레라 창궐, 대흉년, 양곡정책 실패 등 어려 악재가 겹쳤다.
미군정이 통치하면서 일제 경찰은 군정 경찰로 변신했고, 군정 관리의 부정·부패는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1947년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가두행진이 이어졌다.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포하면서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3·1절 발포사건은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유혈 진압에 반발해 그해 3월 10일 공무원과 교사, 학생, 회사원 등 민·관 사업장 95%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일어났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벌인 2500여 명을 구금했고, 이 중 3명이 고문으로 사망, 도민들은 더욱 반발하게 됐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여 명의 무장대는 도내 24개 경찰지서 중 12개 지서를 공격했다. 유혈 사태는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 6년 6개월간 이어졌다.
섬 곳곳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 전체 인구의 약 30만명 중 10%인 3만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됐다. 또 중산간마을 95%는 불에 타면서 폐허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