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돌로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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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성탄의 계절에 비아 돌로로사를 떠올린다. 예루살렘 옛 시가지 내 아랍인 구역에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이어지는 너비 2m, 길이 800m쯤 되는 완만한 오르막 골목길, 예수가 70되는 올리브나무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올라간 십자가의 길이다.

평생소원이던 이 길을 밟았다. 1세기의 양심수 예수와 아픔을 같이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늘도 순례자들의 발밑에 가없이 밟히는 비아 돌로로사를 느끼고 싶어서다.

2000년 전의 주변 모습을 상상하며 초입에 이르렀는데, 십자가 목걸이와 열쇠고리 등을 손에 든 아랍인들이 싸게 팔아요. 원 달러!” 외치며 달려온다. 십자가를 체험하고픈 순례자들에게 대형 나무 형틀을 돈 받고 빌려주는 장면도 눈에 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순례자들의 찬송과 기도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길 안으로 접어들자 좌우에 빼곡히 늘어선 아랍인 가게들이 오가는 순례자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과연 아랍인들에게 비어 돌로로사는 무슨 의미일까. ‘십자가의 길에는 14개 처소가 있다. 각 처소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 앞에 새겨놓은 성구를 묵상하고 그 현장에서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채찍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들을 쳐다보는 어머니 마리아, 십자가를 지고 가다 쓰러져 피땀 흘리는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 여인, 억지로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형장까지 걸어간 흑인 구례에 사람 시몬, 그의 시신을 동굴 무덤에 안치한 아리마데 요셉 등.

예수의 옷이 벗겨진 10번째 처소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고, 시신을 내려 염()하고, 안장된 처소는 예수 무덤교회안에 있다. 13번째 처소에 닿았다. 못 자국, 창 자국, 채찍 자국 난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몰약을 넣은 세마포르로 싸서 염습한 곳이다. 무릎을 꿇고 시신이 놓였던 장밋빛이 감도는 닳아버린 석판을 어루만지자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순간 그가 찔림은 너의 허물 때문이라라는 말씀이 찾아와 심연을 흔든다.

비아 돌로로사의 종착지는 옛 시가지 기독교인 구역에 있는 골고다이다. 예수가 로마 군인들에게 험한 골짜기 돌짝과 가시덤불로 끌려다니며 채찍질 당하는 극한의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흘리는 아픔과 버려진 외로움을 감당한 곳.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비롯한 일곱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고, 그 시신을 장사 지낸 언덕이다.

서기 326, 이곳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러시아 건축양식의 둥근 지붕을 얹은 예수 무덤교회를 세웠다. 섭씨 35도의 불볕에도 교회 앞 광장에는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다. 앉아서 기다리는 하얀 셰마를 입은 에티오피아인들이 샬롬(평화)’을 보낸다. 가난과 기아의 땅에 살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평안과 경건함,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다린 지 한 시간쯤 지나 인파에 밀려 교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는 마치 기독교 박물관처럼 로마가톨릭, 이집트 콥트교회, 시리아 정교, 그리스정교, 에티오피아 정교, 아르메니아정교 6개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출입문 열쇠는 이슬람교회에서 맡고, ‘에디 귤(빈 무덤)’은 콥트교회 몫이다. 각 종파의 경당 제단에는 현란한 장식물이 걸려있고, 채색옷과 장신구를 걸친 사제들은 저마다 다른 형식으로 의식을 행한다.

18개 거대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높이 11m 되는 천장을 고개를 젖혀 올려다본다. 둥근 돔으로부터 찬연한 자연 빛이 내려오며 돔 중앙 아래에 있는 빈 무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심연에서 맑은 영혼으로 만져보고 싶었던 그곳을. 하지만 일정은 끝나는데 한 번에 다섯 명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입구의 좁은 문 앞에 길게 늘어선 순례자들을 헤아리다 빈 무덤 주위를 돌고 발길을 옮겨야 했다. 그토록 보고 싶고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싶었던 부활의 현장을.

순례자의 마음을 아는 듯, 베들레헴 구유에 오신 이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행복하다라며 돌아서는 발길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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