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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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집안 결혼식에 참석차 서울 나들이다. 잔칫날을 받아 놓고 걱정했는데, 거리 두기가 융통성 있게 완화돼 숨이 트였다. 식장 입구 쪽으로 시선을 둔 채, 보고 싶은 사람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 기다림과 설렘으로 가벼운 흥분감마저 든다.

손위 시누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남편과 나를 부부로 맺어준 분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만날 수 있겠냐며 어려운 걸음을 하신단다. 조카의 손을 잡고 오신 시누님을 뵙자 반가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화려한 조명에 신부처럼 꽃다웠을 시누님의 젊은 날이 스쳤다.

힘줄 불거진 손을 맞잡고, 서로 어떻게 아프고 불편한지를 묻고 답하는 게 공통 화제다.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함께 있었다. 어느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깊은 연민과 애틋한 마음으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회포를 풀었다.

식장은 축하객들로 붐빈다. 오랜만에 묶였던 고삐에서 풀린 여유가 얼굴마다 웃음꽃으로 환하다. 젊은이들은 손을 맞잡고 겅중거리다 포옹하고 등을 다독인다. 얼마나 반가웠으면 저리할까. 역시 사람과 사람은 자주 어울려야 정이 돈독해진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벽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모처럼 하객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오랜만에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귀로 즐거움이 가득하다.

모처럼 서울행이다. 어머니 곁에서 하루를 보내며, 동생들과 함께 동네 공원에 나왔다. 한창 절정인 단풍나무 곁을 쉬엄쉬엄 걷다, 흐드러지게 핀 국화꽃 앞에 발이 멈췄다. 초겨울까지 서리를 하얗게 이고, 고향 집 울타리를 밝히던 국화꽃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나에게도 단풍처럼 찬연했던 시절이 있었을 거고, 국화꽃같이 향기로웠던 때도 있었을 테다. 오래 살았던 동네는 올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치장하며 변한다. 낯익은 골목의 변하지 않은 낡은 건물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옛친구 같아 왈칵 반가움이 들었다.

왁자하게 어울렸던 사촌과 동생이 돌아가고, 모처럼 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시간이다. 어릴 적 달콤한 알사탕을 혼자 차지한 것처럼 오붓하다. 어머니를 닮아간다는 동생들의 말에 멀지 않은 내 모습을 그려봤다. 외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오는 모녀 내림은 내가 살아가야 할 소중한 지침서가 되리라. 귀가 많이 어두워진 어머니. 큰 소리로 풀어나가는 실꾸리 같은 이야기로 밤은 시나브로 깊어간다.

나란히 누워 망백을 훌쩍 넘긴 어머니 손을 더듬어 잡았다. 유년 시절 모로 누운 어머니 등에 얼굴을 묻고, 팔로 허리를 감아야 잠이 들었다. 달착지근한 땀내와 은은한 분향, 아궁이를 지피던 생솔가지 타던 매캐한 낸내는 어머니의 체취였다. 그리움이었던 그 향이 전율처럼 훅 안겨 와 잠시 어린 딸이 된다. 소소한 걱정마저 녹아내리는 포근한 밤이다. 구부정하고 왜소해진 체구에 안쓰러움으로 마음이 아리다. 언제 또 어머니 곁에 누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소중하고 아쉬운 시간이다.

세밑이다. 너 나 없이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인내와 격려로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때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소원했던 사회가 끝나고, 곧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은 기대감이 컸다. 해빙기로 접어들기를 고대했던 바람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손에 손잡고 거리 두기에서 거리 좁히기로, 서로 희망을 응원하는 새해가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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