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휴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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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생 수필가

“오늘 무슨 요일이지?” 셔터 내려진 문을 보며 순간 당황해 멋쩍게 요일을 확인한다. 주중이 맞다.

친구가 외숙모님을 찾아뵈려는데, 점심 같이하자 한다. 특별한 일정도 없었고 어르신을 잘 알고 있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외숙모댁에 들렀더니 굼뜬 어르신보다 택배 상자가 먼저 마중 나와 있다. 아이들에게 보낼 거라며 조카가 오면 차에 싣고 가려 준비하고 있었단다. 부피가 제법이다. 그런데 웬걸 우체국은 ‘점심시간 휴무제’로 문이 굳게 닫혀있다.

최근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가 사회적 논점이 되고 있다. 공무원 기본권 보장이 문제냐, 민원업무 처리가 문제냐, 아직은 어디에 비중을 들 수 없을 만치 의견이 분분하다. 직원들이 마음 편히 점심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교대 근무할 상황이 아니라면 먼저 개선책을 마련하고 불편 사항을 해결해야지 민원실 출입을 제한할 일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닫힌 문이 마치 거대한 산처럼 보였을 것이다. 집에 갔다 오자니 삐걱거리는 무릎이 부담되고 기다리자니 잠시나마 몸을 기대앉을 마땅한 곳이 없다. 노년층에게는 기다리는 것보다 천근의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울 뿐이다.

읍·면지역에서 먼저 시행하고 있는 것일까, 점심시간 휴무제에 대한 홍보가 아직은 덜 되었다. 우리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이러니 애먼 주민만 불편을 겪고 있다. 공무원의 밥 먹을 권리와 민원인의 불편 사항 등 원론적인 얘기는 그렇다 하고, 온전히 기관을 방문하면서 불편해할 노약자들만 생각하면 어떨까.

온라인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점심시간에 우체국 민원실을 개방하여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 건 아닌지.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하려면, 공공 기관에서는 기계 작동이 서툰 노년층을 위해 무인민원발급기에서 간단한 민원업무라도 처리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우미를 배치해야 하는 건 아닌지.

최근에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에 대한 인터넷 뉴스를 보다 작년 어느 더운 날을 떠올린다. 어르신은 연세가 있고 자식들은 타지에 살고 있어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친구는 그런 외숙모님의 안부를 확인할 겸 겸사겸사 식사와 드라이브 계획을 세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어르신이 늘 다녔던 고향 바다와 이웃 마을 등을 차로 이동하며 보여드렸더니 그리도 좋아하신다. 고향 마을이 이렇게 변했냐며 연신 감탄하시는데 우리가 다 뿌듯했다.

흐뭇한 어르신의 모습에 좀 더 기분전환 해드리고 싶었지만,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우체국 방문하고 택배를 부쳐야 해 더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없어 어르신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친구는 못내 서운해 한다. “그때 자식을 대신해 큰 효도를 해드린 것 같아 뿌듯하다, 점심시간 휴무제만 아니었어도 좀 더 멀리까지 드라이브할 수 있었는데….”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말끝이 무겁다.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 민원실 셔터를 내릴 게 아니라 공공근로 도우미 배치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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