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란반(抱卵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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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농업인

가을걷이가 끝난 감귤원. 깊은 산 속 암자처럼 적막하다.

바쁜 농사일로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뻔질나게 오가던 농부들 발길 끊기고, 까치밥 다투던 새들의 비상(飛翔)도 없다 보니, 텅 빈 하늘에바람만 들까불며 겨울의 깊은 골짜기로 불어 간다.

넋 나간 듯 서 있는 나무들. 혼자들이라서 더욱 추레하고 을씨년스럽다. 싱그런 갈맷빛으로 빛나던 줄기와 잎사귀들 자취 없고, 핏기 잃은 환자처럼 시난고난 축 늘어져 있다. 농부의 안쓰러운 시선이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에 가서 멈춘다. 일용할 양식인 감귤 한 알 한 알. 오롯이 나무들의 헌신으로 갈무리되었기에, 한없이 숙연하고 경건하다.

수확이 끝난 감귤나무의 앙상한 풍경은, ‘포란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포란(抱卵)’알을 품는 일이다. 포란반은 어미새의 배와 가슴에 남은 지난했던 포란의 흔적을 일컫는다.

난생(卵生)의 새들에게 포란은 거를 수 없는 통과의례이다. 일정기간 포란의 시간이 줄탁동시로 이어져야, 비로소 껍질 깨고 파천황의 새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새들이 포란에 쏟는 지극정성은 막중하다. 포란을 게을리하면 애시당초 새 생명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미새는 알이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부리로 자신의 깃털을 뽑아 둥지를 꾸민다. 뿐만 아니라 맨살에 혈관이 많아 보온이 더 잘되기 때문에 스스로 배와 가슴에 있는 깃털을 뽑아내고, 맨살의 온기로 새끼를 품는다. 그리하여 포란을 마친 어미새의 가슴은 수확을 끝낸 감귤원처럼 황량하고, 새끼들 떠나버린 빈 둥지에는 외로움만 깊어간다.

그나저나 저잣거리는 여전히 요지경 속이다.

‘K방역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새 없던 대통령은 재앙 수준으로 확산되는 ‘K코로나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속수무책이다. 섣부른 위드 코로나라는 오판으로, 새로운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병상을 구하지 못한 위중증 환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런데 이 엄중한 와중에도 대통령은 영부인 손잡고 호주에 나가 인증샷을 찍었고, 유력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방역대책이 아니라 엄청난 보상지원금을 사탕발림으로 제시하고 있다.

당장 먹기는 곶감이 달다지만 도대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혈세를 쌈짓돈처럼 다루는지, 삼류도 못 되는 정치력으로 과연 정글같이 냉혹한 국제환경 속에서 이 나라와 국민들의 안녕을 책임지고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신축년과 임인년이 교차하는 겨울밤,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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