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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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한라산에 바람꽃이 피더니 이내 아등그러지며 을씨년스럽다.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하얀 눈이 쏟아질 낌새다. 도시는 온통 회색빛으로 변하고 길 잃은 바람마저 창문을 두드린다. 구름의 빛깔과 바람소리만 들어도 몸이 움츠러드는 걸 보니 본격적인 겨울인가 보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날을 돌이켜보곤 하는데, 거둔 것도 없이 빈 곳간만 휑뎅그렁하다. 올해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루어질 것만 같았는데 여러 가지 경계에 부딪치면서 성과 없이 세월만 지나가 버렸다. 달인은 자기 기술을 더 잘 해내려고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 자체를 사랑한 것이라 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이루고자 했던 일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결과에만 연연한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살펴보게 된다.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이번에도 나는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조용히 소망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기를, 하는 일이 잘 되기를, 우리 주변 모든 이들이 더 좋아지기를…. 인간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한다.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부모님, 우리 마을…. 영화에서도 보면 주인공이 끝까지 힘을 얻게 되는 시점이 가족을 떠올릴 때부터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적에게 총탄을 맞은 동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모습에 두려워진 군인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한참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갑자기 일어나 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던 용기,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좌절하지 않는 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용기를 내는 힘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사랑이자 희망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과학이나 액션 영화에서도 사건의 연결고리가 사랑인 경우가 많은데, 그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실감케 한다.

대명사로서 우리는 생명이 없지만 행동하는 동사일 때 살아 움직이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연말을 맞이해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리워지는 시기다. 하지만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만남이 그리 편치는 않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리두기도 할 겸 집에서 전화로 문자로 안부를 묻는 건 어떨까.

사랑은 화려하고 번화한 곳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순박하고 아담한 곳, 어둡고 그늘진 곳에 숨어 있기도 하다.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한 해의 마무리였으면 좋겠다.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사회가 여전히 혼란스럽다. 하지만 힘들다 불평하기보다는 나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긴다면 보람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묵은해가 가고 새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이제 인연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인사로 마음을 전해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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