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지켜주는 영물...용맹함과 슬기로움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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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함 물리치는 벽사 역할
초가 상량문에 '虎'자 새겨
어린아이 베갯모에 문양도
아흔아홉골·성산일출봉 전설
호랑이 웅크린 모습의 범섬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호랑이는 십이지신에서 쥐와 소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올해는 천간(天干)의 ‘임(壬)’이 검은 색을 나타내므로, ‘검은 호랑이의 해’ 또는 ‘흑호의 해’라고도 말한다. 임인년을 맞아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본다.<편집자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인간을 지켜주는 영험함을 가진 친숙한 동물로 여겨왔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집안에 걸어두면 삼재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해 ‘호축삼재(虎逐三災)’라고 하며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이거나, 집안에 수예품을 걸었다.

사찰의 벽화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볼 수 있다. 산신이 거느리는 호랑이로 주로 불법 수호의 역할을 담당한다.

민간에서 호랑이는 삿된 것을 쫓아주는 백수의 왕이자 용맹함과 슬기로움의 상징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구호는 퓨전 국악에서 차용한 ‘범 내려온다’였다.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사악함 물리치는 호랑이

우리 민족은 호랑이의 엄청난 파괴력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힘과 용맹을 사랑했다. 호랑이는 영험한 동물로 대접받았다. 산신을 모신 사당 대부분의 산신도에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렇게 호랑이는 마을의 수호자이고, 산신령을 보좌하는 영물이다.

호랑이의 영험성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마주할 수 있다.

제주 초가 상량문(上樑文)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상량은 집을 지을 때 기둥에 보를 얹고 그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과정으로, 상량문은 집을 짓거나 고칠 때 집의 내력이나 공역 일시 등을 적은 기념글이다. 보통 대들보에 쓰는데 상단에 용(龍)자와 구(龜)자를 쓰는데 ‘구(龜)’자 대신 ‘호(虎)’자를 쓰기도 했다. 호랑이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효험과 담대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의 머리쓰개인 호건(虎巾)이나 호랑이흉배, 호랑이수염, 호랑이발톱노리개, 바둑판, 베갯모에 쓰인 호랑이 문양에도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것만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성산일출봉. 봉우리가 100개였다면 호랑이 같은 맹수가 났을 것이라는 전설의 아흔아홉봉이 있다.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

제주는 뭍과 떨어져 있어 예로부터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지만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라산 ‘아흔아홉 골’이 대표적이다.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마치 밭고랑처럼 뻗어 내린 기봉(奇峯)으로 골짜기가 아흔아홉개가 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어 ‘백 골’이 됐다면 제주에도 호랑이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한 골이 모자라 호랑이나 사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전설에는 이 일대에 본래 ‘백 골’이 있었는데 그때는 많은 맹수들이 날뛰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 온 한 스님이 모든 맹수들을 ‘백 골’에 모아놓고 불경을 외고 나서 맹수들을 향해 “너희들이 나온 골짜기는 없어지리니, 만일 너희들이 또 오면 종족을 멸하겠다”고 소리치니 호랑이와 사자 할 것 업싱 모두 한 골짜기로 사라졌고 그 이후 제주에는 맹수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은 호랑이 같은 맹수가 나오지 않자 제주에는 왕(王)도, 큰 인물도 나오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해맞이 장소인 성산일출봉에도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는 아흔아홉봉이라 일컬어지는 첨봉군(尖峯群)이 분화구를 에워싸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성산일출봉의 봉우리가 100개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가 났을 테지만 하나가 모자란 99개이기 때문에 맹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늘에서 보면 호랑이가 웅크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범섬.
하늘에서 보면 호랑이가 웅크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범섬.

호랑이 하면 서귀포시 법환마을 앞바다에 있는 범섬(虎島)도 빼놓을 수 없다.

하늘에서 보면 호랑이가 웅크려 있다고 해서 범섬이라 불려졌다. 2개의 섬으로 구성됐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 같기도 하고, 어미가 새끼 호랑이을 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섬에는 해식쌍굴이 있는데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삼아 누울 때 뻗은 두 발이 이 쌍굴을 뚫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제주도 전체적으로 보면 한라산 북쪽에는 용(용두암), 동쪽에는 소(우도), 서쪽에는 매(차귀도 매섬), 남쪽에는 호랑이(범섬)이 좌정해 섬을 수호하는 형국이다.

제주에는 호랑이의 털 색깔과 무늬를 닮았다고 붙여진 호랑나비를 ‘심방나비’라고 한다. 굿을 하는 무당(심방)의 옷차림처럼 날개가 화려해서 심방나비라 불린다.

이 외에도 곶자왈이나 계곡 숲에서 번식하는 텃새인 호랑지빠귀, 호랑이 발톱처럼 생긴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다고 해 붙여진 호자나무를 비롯해 호랑거미, 제주호랑하늘소 등도 제주에 서식하는 동식물이다.

임인년 새해는 검은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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