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사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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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원장·수필가

묵은해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고열에 놀라 찾은 응급실에서 탈이 났음을 알게 되었고 2021년의 마지막 보름을 입원과 수술로 보냈다.

입원 전에도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 녹록지 않은 보호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응급실 건너편 병상에서 거친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움직이지 말라고요” 아들은 야멸차게 아버지의 손을 침대 위로 내려놓고, 아버지는 아들의 눈치만 살핀다.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아버지는 귀가하겠다고 연신 의료진에게 조른다. 병세가 오래되었나보다 여윈 팔다리는 앙상함을 넘어 오그라들었다. 아들의 형편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듯하다. 세월의 흔적이 눌어붙은 겨울잠바가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 좁은 어깨 위에 무겁게 걸쳐져 있고, 낡은 구두는 헐떡거리며 주인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옆 병상에는 젊은이가 누웠다. 의료진이 입원을 권유하며 보호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병실에 올라가면 교체가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곁을 지키던 보호자가 놀라 “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입원하면 오전에는 딸이, 밤에는 아들이. 이렇게 시간이 되는대로 자신의 생업을 유지해가며 병간호를 했다. 어떨 때는 문병 온 이에게 한두 시간 부탁해 놓고 급한 일을 보기도 하며 조금씩 거들어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이는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며, 어떤 이에게는 생업의 수입보다 더 큰 간병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22년 전망에서 벼리가 되는 키워드로 나노사회를 선정하였다. 극소단위로 파편화된 사회, 개인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가는 사회. 더불어 의지할 이가 존재하지 않는 나노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내가 알아서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책임도 개인의 몫이다.

나노사회는 이미 우리 일상에 다가와 있다. 혼밥, 혼술 그리고 명절과 제사도 최소단위의 가족으로. 은행, 보건소, 식당까지 모든 일은 자동화된 기계 앞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어도 타인에게 말을 걸어 물어보기가 부담스러운 코로나19 상황이 나노사회를 부추긴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대를 못 쫓아가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스터샷이 뭐냐고 어르신이 물어왔다. “3차 접종이 부스터샷이예요”하고 누가 알려줄 것인가? 백신패스가 뭔지 몰라 식당 앞에서 붙들렸단다. 착한 젊은이가 한참을 도와준다고 애쓰더니 예전 핸드폰이라 안 된다고, 동사무소 가서 종이로 발급받아 들고 다니라고 했다며 느린 걸음을 재촉하신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유로 살갑게 다가와 도와주는 손길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은 점점 늘어만 간다. 나노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어르신들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임오년 새해 사회복지사의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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