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희생자에도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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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시인/4·3조사연구원

작년 12월 10일, 4·3희생자에 대해 9000만 원씩 보상하는 4·3특별법이 정기국회를 통과했고 지난 1월 4일 정부는 이 법을 제정·공포했다. 4·3희생자에 대해서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에 걸쳐 사망과 행방불명자에 대해 90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온다. 국가가 보상금을 9000만 원이나 준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석연치 않은 조항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는 9000만 원 받고 누구는 4500만 원만 받고 또 누구는 심사해서 9000만 원을 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보상금을 받게 된다는 조항이다.

개정된 4·3특별법 보상금 지급에 관한 내용을 보면 ‘사망·행방불명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9000만 원을 받게 되어 있다. 또 후유장애자는 9000만 원 이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등급 및 노동력 상실을 고려해서 4·3중앙위원회가 정한 금액을 받게 되고 수형인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위원회가 정한 구금일수를 곱한 금액 및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9000만 원을 초과해서는 안 되는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형인 가운데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9000만 원의 100분의 50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위원회가 결정한 금액을 지급 한다’ 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어렵다. 본디 법은 어려운 것인지 모르지만 이번에 9000만 원을 준다고 하는 보상금은 희생자 모두가 다 똑같은 금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도 누구나 다 9000만 원씩 받는 것처럼 보도되었고 대다수 유족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말이다.

4·3희생자와 유족들은 지난 2000년 6월부터 작년 2021년 6월 30일까지 7차례나 4·3희생자 및 유족 신고를 했다. 신고 후 1년여에 걸친 심사 끝에 4·3희생자 및 유족으로 결정되어 ‘4·3희생자 및 유족결정 통지서’를 문서로 받았다. 이 결정서 어디에도 등급은 없었다. 누구나 똑같은 4·3희생자이며 유족이라는 결정서였다. 그런데 보상금 9000만 원이 차등 지급된다는 것이다. 4·3특별법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똑같이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누구는 많이 먹고 누구는 덜 먹고, 고르지 않은 것은 참을 수 없는 게 아닌가. 4·3보상금 결정으로 희생자와 유족의 닫혔던 가슴을 살포시 여는가 했지만 모든 이의 가슴을 활짝 열지 못한 이유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을 가지고 따지고 드는 것을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보상이나 배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을 거의 서두에 깔아 놓는 것은 흔한 일이다. 4·3으로 얼룩진 희생자와 유족들의 삶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4·3해결의 문턱에서 4·3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국가의 보상과 배상이라고 본다.

이제 곧 봄이 온다. 4월이 온다. 4·3이 오는 것이다. 대립과 반목을 넘어 화합과 상생의 길로 가는 4·3이라고 침이 마르고 닳도록 외치고 외치는 4·3이 온다. 국가가 저지른 4·3국가폭력에 대해, 완전한 4·3해결 운운하면서 보상금 지급을 주 내용으로 하는 4·3특별법 개정에 대해 도민과 유족이 이루어낸 역사적 성과라며 크게 환영했던 도민사회의 분위기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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