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얼이 들어있는 듬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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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 제주돌문화공원관리소/애월문학회장

며칠째 겨울 닮지 않는 날씨가 이어진다. 이런 날 자녀와 함께 처가인 화북 거로마을로 향했다. 산책도 할 겸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날씨마저 좋으니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거로마을은 연삼로를 가운데 두고 윗거로와 아랫거로로 나뉜다. 아랫거로를 걷기로 하고 건널목을 지나간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팽나무에서 쉬어가자고 보챈다. 빨리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만큼 쉬었다 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여기저기 기웃대던 아들이 둥글둥글한 돌을 가리키며 등돌이 뭐냐고 묻는다. ‘등돌거리란 표지석이 있고, 팽나무 밑에 4~5개의 돌이 있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마을 청년들의 힘자랑을 하기 위해 놓은 돌이라 말을 하고는 듬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로마을 등돌거리에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듬돌들기를 했던 곳이다.

제주는 지천으로 깔린 것이 돌이다. 돌은 훌륭한 건축자재가 되기도 하고, 돌하르방과 같이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친구도 된다. 무덤을 지키는 동자석이나 밭담’, 무덤 주위에 쌓아놓은 산담등 돌문화가 존재해 왔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렇듯 제주 사람은 돌과 함께 생활하고 일생을 돌에서 시작해 돌에서 끝난다고 하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돌문화 가운데서도 둥글둥글한 돌을 들어 올리는 듬돌은 예부터 제주지방에서 많이 이루어졌던 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듬돌들기는 육지부에서도 이루어졌으나 제주도에서만큼은 활발히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만큼 듬돌은 제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진 민속놀이기도 하다.

이 듬돌은 제주 서부 지역에서는 듬돌이라 일컫고, 동부에선 드름돌이라고도 부른다. 등돌’, ‘뜽돌등 여러 가지 용어로 부른다. ‘듬돌은 말 그대로 들어 올리는 돌이란 뜻이다.

이러한 듬돌 들기는 언제, 어떤 이유에서 이루어졌고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 정확한 문헌 기록을 찾아보기 힘드나 마을 입구에 50kg 정도의 둥근 돌을 놓고, 마을 청년들의 돌을 들어 올림으로써 힘자랑을 했던 것으로 보아 어떤 의식을 행할 때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렇듯 청년들의 성년이 됨을 인정하는 등 일종의 성인 의식으로 행했던 것이 마을 청년들의 힘겨루기 경기로 발전한 것이란 추측이다.

간혹 이웃 마을 사람이 와서 듬돌을 들어 올리지 못하면 그 마을 청년들이 힘센 것을 높이 평가하고, 반대로 가볍게 들어 올린다면 그 마을 청년들이 무시나 무안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음력 정월 초나 보름에, 당제를 치를 때, 칠월 칠석이나 백중 때, 추석 때에 듬돌 놀이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들돌 앞에 제물을 진설하는 지역도 있었다고 하니, 듬돌들기는 주술성도 들어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 듬돌은 민속 설화에도 등장하는데 한락댁이이야기가 그 예다. 여자이지만 힘이 장사였던 한락댁이는 남편이 듬돌들기 내기에 져 곤란을 당하게 되자 남장을 하고 괴력을 발휘해 남편을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마을에서 듬돌들기 모습은 좀체 보기 힘들고, 각종 축제에서나 듬돌들기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듬돌은 하찮은 돌이 아닌 우리 민족의 얼과 채취가 묻어 있는 것이어서 전승하여야 할 문화유산이다.

듬돌을 들어본다. 힘이 미치지 않아 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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