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 받는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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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어린 시절엔 귤이 귀했다. 마을에서도 몇 되지 않은 과수원에서만 생산되었다. 어쩌다 귤 하나를 얻으면 껍질까지 먹었을 정도다. 한때는 대학나무로 일컬으며 너도, 나도 다퉈 재배하던 귤나무, 이젠 제주도 외에 남해안에서도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아내가 귤 조청을 만든다며 친하게 지내는 언니네 밭으로 가자고 한다. 트럭을 몰고 이웃 마을로 향했다. 귤 수확을 마친 과수원이 을씨년스럽다.

어디선가 귤 썩는 냄새가 코를 후볐다. 수확 철을 앞두고 비가 많이 내린 탓일까, 썩어가는 귤을 바라보며 애태울 농부가 떠오른다. 청년 때 만 평에 이르는 과수원을 경작했었기에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게 걱정하는 사이 밭에 도착했다.

“언니, 나 와수다.”

“그래, 와시냐? 혼저 들어오라.”

반가이 맞아 주시는 내외분, 인자함과 끈끈한 정에 마음을 다 풀어 놓고 싶다. 아내는 언니와 함께 따 놓은 귤을 골라낸다고 하고, 나는 M 대선배님과 차를 마시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공무원 생활로 부이사관까지 오르셨던 분이다. 말씀 한마디에도 농익은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귤을 골라내는 곳, 과수원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십 개의 컨테이너엔 귤이 가득가득 채워 있었다. 가공용으로 가야 할 귤이 남아돌아 폐기해야 한단다. 나무 아래 비워 놓고 장화를 신은 발로 밟아 으깬 후 그걸 사진 찍어 보내야 한 컨테이너에 3600원의 보상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말에 가슴이 아리다. 아깝다는 생각과 귤나무에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과한 표현일까. 조금 전에 오다가 귤이 부패하는 냄새의 이유가 더해지며 귤이 홀대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열 컨테이너도 넘은 귤을 얻어왔다. 조청을 만들기 위해서 아내와 마주 앉아 껍질을 벗긴다. 가끔 일부 썩은 것이 보이면 그 부분만 칼로 도려내어 버리고 따로 그릇에 담았다. 헐벗은 짙은 황금빛 귤이 탱글탱글하니 먹음직하다. 며칠은 냉장고에 두고 실컷 먹겠다.

아내는 서귀포에서 자랐으니 북쪽인 이곳보다 귤은 흔히 접했을 테지만, 과수원을 갖지 않았던 시절엔 귀했던가 보다. 주변 귤 선과장에서 어머니가 얻어온 것을 덜 상한 부분만 도려내어 삶아 맛있게 먹었었다며 적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가 되었다. 대가족이 살던 지난날엔 컨테이너로 갔다 줘도 소비가 잘 되었지만, 이젠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간 것도 다 먹지 못해 버려지는 일이 적지 않다. 몸에 좋다는 귤을 억지로라도 먹어 줬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이 언제부터 이리 풍족해졌나. 작은 동네이건만 클린하우스엔 날마다 버려지는 쓰레기로 넘친다. 바꾸지 않았어도 될 만한 물건들이 눈을 흘기며 뒹굴고 있다. 너도 나도 풍요가 안겨준 환경재해가 두렵다고 말은 그럴싸하게 하면서 이 무슨 역설인고.

귤 조청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유산균 그릇에 여러 가지 과채와 조청을 한 숟가락 넣고 섞어 떠먹는다. 아침을 그것으로 대신해도 부족하지 않다. 가볍게 먹은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 또 한 그릇을 비우면 속이 한결 편안하다. 세균을 사멸시키는 힘이 귤에도 있으니 코로나19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감기에도 좋은지 고뿔에 걸렸던 게 언제인지 가마득하다.

귤 값이 오름세라는 소식이다. 가공용도 값이 올라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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