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Young Carer)’, 그들의 삶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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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2020년 9월 13일.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후 온몸이 마비되고 음식은 콧줄을 통해 겨우 섭취할 수 있고 대소변은 타인이 처리해 줘야 했다.

2021년 4월까지 7개월 동안의 병원비는 2000만원. 삼촌이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해결했다. 더 이상의 병원비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퇴원시켜야 했다.

2021년 4월 23일. 아버지를 집에 모셨다. 아버지께 약간의 음식물을 주입하고 몸도 닦아드렸다. 하지만 욕창 방지를 위해 2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야 했고, 긴급패혈증 위험이 높아 누군가는 종일 곁에 있어야 했다. 이미 월세는 밀려 있고, 전화도 가스도 끊긴 지 오래. 아르바이트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헤어진 어머니, 연락이 닿지 않는 고모 두 분, 병원비를 보태준 삼촌 외에 가족은 아무도 없다. 다시 삼촌에게 문자로 부탁을 했다. ‘쌀 사 먹을 돈 2만원만 빌려주세요.’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 지 1주일이 되던 5월 1일. 더 이상 당신을 돌볼 상황이 되지 않음을 느낀 걸까, 아버지도 “이제는 너의 삶을 살라”고 했다. 결국 그날부터 음식물과 물을 드리지 않았다.

5월 8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몸무게는 39㎏. 사망원인은 영양실조.

이른바 ‘간병살인’으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22살 청년의 이야기다.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가슴이 꽉 막힌다. 주민센터나 복지관에 전화 한 통 해 볼 순 없었을까. 왜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외치지 못했을까. 답답하고 원망스럽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미안하다. 대법원에서는 어떤 최종판결이 내려질지 모르겠지만, 이 청년에게 내려진 징역 4년의 선고는 분명 우리 사회에 대한 선고임에 분명하다.

늦어지는 결혼연령,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부담은 크기만 하다.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돌봐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된 자식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간병살인’의 위험성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개인적 사정으로 떠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영 케어러(Young Carer)’. 부모의 부양을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동과 청년들을 말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를 박탈당한 채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앞으로 3년 후인 2025년으로 예측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초고령 사회 진입 이후 ‘영 케어러’들은 더 늘어날 것이고, 감당할 나이는 더 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들의 삶에 주목해 관심을 가져 사람을 살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고 우리 사회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연이어 있는 올해. 정당과 후보자들은 듣기 좋고 화려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부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이제는 네 삶을 살라”고 했던 청년의 아버지 마음 그대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책임을 떠안은 이 시대의 아동과 청년들에게, 국가의 목소리로 “네 삶을 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택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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