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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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웬일이야! 전엔 함께 오름도 오르곤 했는데 집까지 찾아오다니! 어쨌든 여기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처음으로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뵈었다. 올해는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쉰 해가 되는 해다. 선생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건강하시고 또 우리 제자들하고 유쾌한 소통을 즐기셨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다. 아파트 밖 뜰에서 잠시 만나 안부도 전하고 사은금품을 전했다. 동기동창회의 마음을 내가 대신 전해드린 것뿐이다.

다시 다른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전에 몇 차례 찾아뵈었던 기억을 더듬어 댁에 이르렀다. 초인종을 누르고 몇 차례 노크하니 사모님이 나오신다. 선생님은 침상에 계셨다. 반갑게 맞아 주신다. 50년 전, 교과서가 채 도착하지 않아 선생님이 괘도에 교과서 내용을 적어서 수업을 해주시던 그 자상한 모습을 함께 얘기하며 한참을 보냈다. 사모님이 내오신 따뜻한 차 속에 두 분의 애틋한 제자 사랑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부디 빠른 시일 안에 건강이 회복돼 밝은 날에 맑은 하늘 아래서 다시 뵙기를 바라본다.

선생님 댁을 나서며 고등학교 시절을 잠시 회상해 본다. 너무도 긴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땡볕에 많은 친구들이 흙바닥에 쓰러지기도 했지만 제주도 최고의 교사진으로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교육청과 교장 선생님의 노력을 잘 기억하고 있다. 또한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고 양철 지붕위에 빗소리가 요란했던 허술한 교사에서, 선생님들이 보여주었던 헌신적인 노력과 무상으로 제공했던 수많은 보충 수업과 시험들이 결국 전국 최고의 졸업 성적과 진로 진학으로 결실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백호기 축구, 원보훈련, 교련 사열 등은 아직 성숙치 않았던 우리들에게는 무척 큰 시련이었고,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큰 동경을 기대하게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커가듯이 사람도 스승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바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처럼, ‘무릇 나무가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잘 날이 없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 것(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이 인생의 이치인 듯하다. 우리를 졸업시켜주신 졸업반 담임 은사님이 모두 저 하늘 높은 곳에 계시다. 그러나 여덟 분의 교과 은사님이나마 뵈옵고 잠시나나 옛일을 회상하며 고마움을 전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제는 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고 또 가끔씩 눈발도 보이면서 꽤 쌀쌀한 날씨를 보였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공기가 상서롭고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고 맑다. 이른 아침 빗자루를 들고 자그마한 앞마당에 나뒹굴고 있는 낙엽을 쓸어본다. 대추, 목련, , 비파 낙엽들이 많이 쌓였다. 앙상한 가지 끝을 바라본다. 우리와 많이 닮았다. 이제 우리도 어느덧 낙엽이 되어 높은 가지 한 끝에 매달려 땅을 바라보는 메마른 대추 한 알, 목련 잎 하나의 처지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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