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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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설음식만큼이나 연휴도 푸지다. 이맘때면 지인들께 세배 다닐 텐데 올해도 코로나 19로 발이 묶였다. 새해 인사를 전화로 안부 묻듯 더러 오가는 상황이다 보니,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가벼워 보이긴 매한가지다.

언젠가부터 세배 후 오가던 덕담 중 길어진 수명 탓도 있지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보다 ‘부자되세요’ 혹은 ‘건강하세요’가 어감도 좋고 더 자연스럽다. 처음 ‘부자 되세요’란 말을 들었을 때는 어색하고 어딘지 헐겁게 느껴졌으나, 이젠 이 인사가 보편적이고 편안한 인사가 되었다. 언어도 시대의 흐름 따라 같이 변하는 것이 맞다.

부자가 되려면 얼마를 가져야 할까. 내 한 몸 뉠 자리만 있으면 족하다는 사람도 있겠고, 제주도를 다 갖는다 해도 성에 안 찰 사람도 있을 게다. 부자 되기는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가 갈망하지만 다수가 고만고만한 자리에서 맴돈다. 돈에 대한 명언도 많고 그걸 얻기 위해 별별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돈이란 벌기도 힘들고, 벌어 놓은 것에 보태기도 힘들고, 보탠 것을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필자에겐 그런 큰돈이 없어 놔서 이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어려운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옛말에 부자 삼 대 못 간다는 말도 아마 ‘어려운 일’이라는 반증일 게다.

지난달 ‘사상 처음, 국내 최초로 국보 두 점이 미술품 경매에 나왔다’는 보도를 접했다. ‘보물도 아니고 국보라니…’하는 생각에 속도 있게 검색해 봤다. 무엇보다 존경해마지 않는 고 전형필 선생께서 설립한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라지 않는가.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일제 때 전 재산을 들여 일본에 유출되는 문화재를 사들였는데, 이젠 그곳의 재정난으로 국보 중 불상 2점이 경매에 붙여진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간송미술관은 몇 번을 별러도 이상하게 연이 닿질 않아 못 가봐서 늘 아쉬움이 크던 터에 책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을 접했었다.

간송 선생은 24살 때 조선 40여 명의 거부에 들 정도로 큰 유산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젊음과 재산을 조선의 문화 예술사에 관한 연구나 관심이 거의 없던 시절 서화나 도자기를 중심으로 모았다고 한다. 그러다 선생께서 당시 기와집 몇 채 값을 주고 불상을 수집했는데 불상이 일본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아 유출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란다.

돈이 많으니 이 일이 가능한 것은 맞지만, 돈이 많다고 누구나 다는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거금을 줘 모은 수집품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이 분이 진정 애국자구나 생각했었다. 영조 때 한 유명 수장가가 ‘평생 눈에 갖다 바친 것을 이제는 입에 갖다 바칠 수밖에 없다’며 애써 수집한 것을 내다 팔 때의 심정을 예로 들며, 간송 선생의 스승이신 위창 오세창 선생께서 생전에 당부한 말이 소개된 글을 읽었다.

‘수장가는 모으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려운 게야. 힘들게 수장한 물건을 절대 다시 내놓지 않아도 될 만큼만 모으게.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자네 스스로 또는 자손들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니, 내 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라고. 스승의 가르침에 의미가 실로 크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럴 때 부자라면, 부자였으면 …. 턱도 없는 큰돈 앞에 행여 요행수라도 통할지 복권이라도 사러 나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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