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마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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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언제 봄의 걸음마가 시작되는 것일까. 복수초 소식도 들리고 마당의 백매도 피어나며 봄을 배달하고 있다. 그러나 겨울은 입춘이 지나도 떠나기 싫은 모양이다. 엊그제는 공중으로 함박눈이 나풀대다 여린 햇볕에도 이내 사라졌다. 변치 않고 시간의 흐름을 맞설 게 무엇이랴.

흔히들 삶은 날씨와 같다고 한다. 비가 오는가 하면 개이고 바람이 부는가 하면 고요해지고 춥다 덥다 느끼노라면 세월은 가고. 지금 나는 어떤 날씨를 맞고 있을까.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라고 생각한다. 근심 걱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알기에 이미 내려놓았고, 오늘이 내일보다 좋은 건강 상태임을 예견하기에 지금에 만족하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도 쉬엄쉬엄하면 된다. 노년의 축복을 잃기 전에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봄에는 처조카가 소일하시라며 어디서 구했는지 표고버섯 종균을 심은 참나무 토막 다섯 개를 집으로 가져왔다. 가끔 물만 주면 된다기에 하귤나무 아래 두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다가 하루에 한 번에서 점점 줄어 일주일에 두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고 서서히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반년을 넘어도 별다른 낌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지자 아예 버릴 작정으로 마당 구석으로 추방해버렸다.

어쩐 일일까. 연초에 한 곳에서 활짝 벌어진 표고버섯 두 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만사 때가 있음을 죽비처럼 알렸다. 그리고 그게 기대의 불씨였다. 아니나 다를까 근래에 조그만 얼굴을 여남은 곳에서 드러낸다. 기다릴 줄 알라는 자연의 가르침이라니.

인내하며 지내다 낭패한 일도 있다. 냉수나 자극적인 음식에 치통이 스멀거렸지만, 일종의 상실에 대한 거부감으로 얼른 치과를 찾지 않았다. 몇 년 전 신경치료를 받으며 크라운을 하지 않으면 치아가 깨질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신경치료란 치아 내부에 신경과 혈관이 들어있는 치수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다른 재료를 넣어 밀봉하는 것이다. 결국은 여러 차례 드나들며 신경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반년 후에 발치냐 크라운이냐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사이 겪은 치통은 어리석음의 대가였으니 누굴 탓하랴.

날마다 오미크론 후폭풍이 사납다. 확진자 수가 가파르다. 부스터샷까지 맞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관계의 상실은 어쩔 수가 없다. 사는 맛이 줄어들 수밖에. 외톨이 생활이야 견딜 수 있을 테지만 경제활동이 위축으로 의식주의 해결이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큰 문제다. 얼굴을 맞대지 않는다고 무관심해선 안 된다. 누구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대선과 지방선거가 멀지 않았다. 목뼈 굳은 정치인들로부터 큰절을 받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말들이 난무할 테다. 실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과 진실한 삶이 선택의 잣대가 되었으면 한다. 권력을 탐하고 사욕을 채울 사람은 배제하고 공생의 길을 닦을 사람이 선출되길 소망한다. 높은 곳이 누리는 곳이라면 낮은 곳은 느끼는 곳이라 한다. 가슴이 사는 세상을 만들 지도자를 고대한다.

봄이 메시지는 늘 희망이다. 신은 인간에게 열매가 아니라 씨앗을 주었다지 않는가. 각자 받은 씨앗을 찾아 이 봄에 심고 가꿔보자. 어떤 열매를 얻게 될는지 궁금증으로도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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