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내리는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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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 수필가

태풍이 예보되었는지 많은 배들이 방파제 안에 어깨를 맞대고 정박해 있다. 자세히 보니 닻을 바다에 내리지 않고, 모두 가슴에 안고 있다. 옆 배들과 부딪혀도 배가 부서지지 않고, 일정한 여유를 만들기 위해 배 앞머리에 검은 타이어도 붙이고 있다.

멈추고 있지만 서로가 어깨를 맞대고 있으니 굳이 닻을 내릴 필요가 없는가. 굵은 쇠 말뚝에 고정시켜 둔 줄이 배와 육지를 연결하고 있다. 팽팽하게 매어둔 줄이 배를 붙잡아 두고 있다. 바다 가운데서는 닻이 없으면 배는 한곳에 멈추지 못하리라. 한곳에 머물러 그물을 내리고 올리려면 반드시 바다에 닻을 내려야 하리라.

항구에 들어온 배들은 닻을 내리지 않는다. 닻을 배의 갑판에 두고 멈추어 있다. 가슴에 닻을 안은 배는 천천히 바람에 일렁이지만, 불안해하지 않는다. 굵은 쇠 말뚝이 단단한 줄을 매달고 있기도 하지만,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서로 어깨를 단단하게 잡고 있기 때문에 출렁이면서도 그리 불안해하지 않는다.

빛바랜 낡은 배가 부두 한편에 오도카니 앉아있다. 닻도 없다. 땅이 닻이다. 배의 아랫배를 땅바닥에 붙이고 주저앉아있다. 바다를 떠난 배는 닻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리라. 온 세상의 땅이 모두 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군 생활을 오래 하는 동안 한곳에 오래 닻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늘 일 년 혹은 이 년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늘 가슴에 닻을 안고 살아야 했다. 연말이 되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같은 부대 내에서도 일 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곤 했다. 간단하게 짐을 챙기면 이동 준비가 되었다. 늘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이동을 한다는 생각에 상자 포장을 다 풀지 않고 살기도 했다. 대충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았다. 피항을 하거나 명절 부근 배의 가슴에 닻을 안은 배처럼. 어느 한 곳에 제대로 닻을 내리고 살기보다는 닻을 가슴에 안고 생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족이 함께 다녔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도 이사를 함께 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를 여섯 곳이나 옮겨야 했다.

아빠, 교가를 외울 만하면 또 학교를 옮겨야 하네라면서 친구들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장교로 군 생활을 하는 것이란 한 곳에 닻을 내리고 오래 생활할 여건이 될 수 없었다.

새로운 곳에 부임을 하면, 지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지형을 연구했다. 부임한 곳의 작전지역에 대해 연구를 하고, 생활에 필요한 장소를 대략 찾아보아야 했다. 다음에는 사람들을 알아갔다. 상관부터 부하까지. 지휘관을 역임하는 동안은 많은 부하들의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늘 명단과 특징을 메모하여 가지고 다녔다. 이름과 실제 사람을 일치시키기 위해 만나는 사람은 꼭 다시 인적 사항을 확인하여 메모해 두었다. 상관보다 많은 부하들. 특히 병사들 가운데는 부대 적응이 어려운 전우도 상당히 많아 새로 오는 전우부터 파악했다.

그들에게 내가 닻이 되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부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고민이 군 생활에 장애가 되는지 찾아내고자 고심하였다.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배경이 되어주고 닻이 되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군 생활을 함께하는 전우들이 다치고 불행해지지 않도록 믿음직한 선장이 되고 튼튼한 닻이 되어주고 싶었다.

태풍이 예보되면 모든 배들은 항구로 들어온다. 서로 단단하게 밧줄을 묶고, 아무리 강한 파도와 바람이 불어도 서로 손을 놓지 않으려 단단하게 결박을 한다. 물결이 높아도 절로 흔들려도 배가 부서지지 않고 깨어지지 않도록 배 가장자리에 완충 역할을 할 폐타이어들도 붙여 둔다. 서로가 닻이 되어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한 척의 배가 닻을 내려 배를 고정시키는 것보다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위험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서로 힘을 합쳐 어깨를 껴안는다면 그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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