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주워온 작은 행복
길 위에서 주워온 작은 행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안혜주 수필가

11시간이라는 긴 비행을 마치고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태양은 아직 공항 대기실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같은 건 없었지만 남은 여정을 위해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터키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네가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저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말겠어!”라고 말을 한단다. 죽음을 각오할 만큼 열정적인 그들의 가슴이 아마도 저 붉은 태양을 닮은 건 아닐까.

터키는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둘러싸여 동서양의 다양한 문명이 존재하던 곳이다.

또 역사와 지리적으로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6·25 전쟁 때 터키 정부에서 그들의 군대를 파견해 주었는데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하지만 “카카르데쉬” ‘피로 맺어진 형제’라며 친근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터키를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짐을 풀기도 전에 가이드의 당부가 이어졌다.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셔야 합니다.” 일찍이라는 말은 새벽이라는 뜻인데 이미 녹초가 된 몸에 흠뻑 젖은 솜을 어깨에 더 올려놓는 것 같은 기분에 쓰러지듯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들판에 올리브 나무가 빽빽하게 보이더니 식사때마다 다양한 올리브 요리가 나왔다.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보일 만큼 어마어마한 올리브 농장, 좁은 농지에서 열매를 수확해야만 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동서 교역의 중심지인 에페수스다. 매년 5월이면 고대도시 에페수스에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축제가 열린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의 가슴에 24개의 유방이 달려있는데 유방의 수만큼 흰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줄을 선다. 그러면 그 뒤를 이어 여신에게 자신의 고환을 바친 남자 사제들이 따른다.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출발한 사제 행렬은 동방 체육관과 아고라 그리고 음악당을 지나 에페수스 시청으로 향한다. 시청 앞에는 또 하나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있는데 두 여신이 만나게 되면 군중들의 열광이 절정에 이른다. 이때 총독이 관저에서 나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면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셀시우스 도서관을 거쳐 에페수스 광장에 당도하게 된다.

광장에 이르면 희생된 소를 바치는 제의(祭儀)가 열린다. 이때 남자 사제들이 24마리의 황소 고환을 잘라 아르테미스 여신의 목에 걸어주는데 군중이 다시 함성을 터뜨린다. 음악에 따라 무용수들은 춤을 추고 도살된 소들이 제단에 올려지면서 에페수스의 축제는 무르익는다고 한다.

그 시대, 그 나라의 문화라지만 제단에 바쳐진 수많은 황소를 생각하니 인간의 잔혹함에 마음이 아파 온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내내 얼마나 생동감 있게 들리든지 에페수스의 축제를 직접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변이 코로나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도 2년이 넘다 보니 사람들의 감각마저 무디어가는 느낌이다. 이럴 때 즐거웠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활력을 불어넣는 건 어떨까. 여행은 설렘이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의 느낌을 되살려 보자.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자유롭게 여행하게 된다는 희망을 품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