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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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숙 수필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린다. 손동작이 멈춘 화면 속의 혼자 사는 연예인이 아침을 맞이한다. AI에게 오늘의 날씨를 묻고 이어서 끝말잇기를 시작한다. 몇 개의 단어가 오고 갔다. 기계는 장소-장속, 고수-보수, 도시-도씨로 사람의 목소리를 잘못 알아듣고 스스로 승을 외친다. 연예인은 허망하게 웃는다. 운동하려고 복근 운동을 외쳐보지만 볶음 우동을 보여주며 오히려 식욕을 자극한다.

가로 7세로 15, 무게는 채 500g도 안 되는 이 물건이 내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여 움직이게 한다. 이것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이다. 수시로 확인하고 들여다보게 한다. 잠시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이나 궁금한 것을 찾기 위해 터치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정신을 차려 보지만 왜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온라인 세상에서 지낸다. 어쩌다 클릭한 상품은 쉬지 않고 핸드폰, 노트북, 사무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유혹한다.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끈질김이 이 세계에서는 존재한다.

5년 전, 세간의 시선을 끈 한 경기가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경기다. 이세돌은 AI와의 경기에서 514패로 마무리 지었다. 그 이후에도 AI를 이긴 바둑선수는 없다. 알파고의 전적 중 유일한 1패는 이세돌이 갖고 있다. AI가 등장하면 곧이어 이세돌이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곤 한다.

내가 걸었던 흔적이 온라인상에 고스란히 눈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남겨진다. 유튜브에서는 한 번 시청했던 동영상과 비슷한 영상들이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 상단을 장식하여 나도 좀클릭해 달라고 줄을 서 있다. 내가 드나들었던 카페, 검색하는 상품, 즐겨보는 동영상, 검색어 등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수준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빅데이터를 확보한 이 세계에서 나를 당돌하게 규정지어 놓았다.

나이 : 49~59/ 성별 : 여자 / 결혼 여부 : 기혼 / 자녀 유무 : 부모가 아님

가계 수입 : 중하위 / 학력 : 학사학위 / 주택 소유 : 세입자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온라인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빙산의 일각인데 말이다. 빅데이터가 평가한 정보의 점수를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

축구 경기의 묘미는 공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하는 것이다. 넓은 경기장 한구석에서 작은 공을 실감 나게 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카메라 감독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광판을 통하여,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에게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공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카메라가 공을 따라간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축구경기장에서 있었던 일. 경기 후반 지고 있던 팀이 결정적인 동점 골을 터트렸는데 정작 팬들은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축구공을 열심히 따라가야 할 AI 카메라가 심판의 민머리를 축구공으로 오인하고 심판을 쫓아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팬들은 AI가 축구 경기를 망쳐 놓았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단어를 종이사전으로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 검색이 간편하고도 쉽지만, 단어와 연관된 유사단어를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차츰 이 물건은 검색, 결제, 출금, 신분 확인 등 활용범위가 커지고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이 기계가 다 기억하여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뽐내고 있다.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감정의 기복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하던 일이 AI로 바뀐다. 은행 창구를 이용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인터넷뱅킹으로, 현금을 찾고 싶으면 ATM기를 이용한다. 커피를 주문할 때도 포스기를 이용한다. 인류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고민한다.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의 늪에서 앞으로 인류는 얼마나 허우적거릴 것인가.

나는 이 세계를 향하여 소심하게 질문해 본다.

나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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