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듯 ‘평화’도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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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 직원이 무언가 들이민다. 뭔가 봤더니 코로나19 자가진단 키트다. “꼭 해야 돼?” 주저하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 본 아픈(?)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심코 긴장하고 있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직원에게 콧구멍을 내밀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다.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내 눈에는 찔끔 눈물이 핑 돌았지만 면봉을 손에 쥔 직원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긴장 속에 15분이 흐르고 붉은색 줄이 한 가닥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았다. 믿기지 않지만 연일 3000명을 넘나드는 제주지역 코로나19 감염자 수에 이제는 감염되는 것이 놀랄 일인가 싶으면서도 나만큼은 피해 갔으면 하는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선제검사를 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 근무자들은 콧구멍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지면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장애인 또는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있는 것이다. 감염자 급증에도 방역 정책이 완화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긴장감 또한 느슨해지고 공포감 또한 사그라들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위기감은 혈혈단신 전장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 못지않을 것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앞날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반면에 이른바 ‘대권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 역대급 박빙 지지율, 역대급 네거티브 선거전이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단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이 당장 내일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로 제시했다. 에토스(ethos)는 연사에게서 느껴지는 인격, 매력, 청중에 대한 영향력으로 설득의 60%를 차지하고, 청중의 심리상태인 파토스(pathos), 연사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인 로고스(logos)는 각각 설득의 30%, 10%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충동적인 존재이기에 논리보다는 감정과 이미지에 더 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통령을 꿈꾼다는 이들이 정책으로 경쟁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하고 이미지 부각에만 애쓰며 유권자의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에서 논리는 소용없음을 그들은 또 한번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늘 전쟁터에 비유된다. 상대하는 적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총탄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전쟁 상황 속에서 탱크를 맨몸으로 가로막고, 러시아 군인들에게 항의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봄’이다. 어김없이 봄이 찾아 주었듯, 전쟁 같은 우리 삶의 현장 곳곳에 그리고 전쟁의 공포 속에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평화’가 찾아와 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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