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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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옆 골목에 사셨던 고모할머니는 말끝마다 우리 홍씨 집안 남정네들이 단명하였다며 아버지의 건강을 늘 염려하였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오가며 한 그 걱정은 군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친정집엔 지난해 구순이었던 아버지와 올해 구순을 맞이한 어머니가 살고 있다. 등이 많이 휜 어머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버지의 뒤태는 젊은이로 착각할 만큼 꼿꼿하다. 그 나이에도 한문책을 들여다보고, 게이트볼을 치고, 장구를 배우는 것은 몸에 밴 부지런함 탓이리라. 동네에선 누구보다도 건강한 사람으로 입에 오른다.

이런 아버지의 장수 비결에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내가 우선으로 꼽는다면 호탕한 웃음이라 하겠다. 평상시 말수가 적어 묵묵히 있다가도 웃을 때만큼은 그 과묵함을 깨버린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는 그 웃음소리가 정점에 이른다. 마치 봉했던 웃음 보따리를 끌러 놓기라도 한 듯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모여 앉은 우리들도 덩달아 팝콘 터지듯 웃곤 한다.

박장대소 15초의 효과가 100m 전력 질주, 윗몸 일으키기 20, 에어로빅 5분과 맞먹는단다. 대단하다. 그렇다면 코미디 프로를 볼 때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선두로 단체 운동을 했다는 게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웃을수록 체내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와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강화, 심혈관 예방, 기억력 향상, 자신감 상승 등 신체에 변화를 가져온단다. 돈이 전혀 들지 않고 몸에 유익한 것 중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웃음은 부작용 없는 불로초며 하루에 한 번 실컷 웃으면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는 말에서도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웃음 치료에선 억지로라도 웃으라 한다. 거짓 웃음도 진짜 웃음 효과와 다를 바 없다며.

웃음이 진품이든 짝퉁이든 어울러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울음은 혼자 울 때가 가장 속 시원하지만 웃음은 아니다. 혼자 웃는 것만큼 멋쩍은 게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함께 할수록 더 큰 웃음의 파고가 일어 가슴이 뻥 뚫리는 경쾌함을 맛본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 웃을까. 놀랍게도 아이들이 하루에 400번 정도 웃는 것에 비해 성인들은 평균적으로 14번이라 한다. 나이 들수록 입꼬리 올리는 데 박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건강식품을 챙기는 걸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은 웃을 일이 빈약한 코로나 시대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우울의 척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무너짐. 떠들썩한 만남이 불안의 스침으로 변했다. 웃음의 시발점이 되었던 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웃을 거리를 물색하기 위해 인터넷 뉴스들을 뒤적거린다. 살포시 미소 짓게 하는 내용이 있으려나. 바람이 컸을까, 클릭하는 기사들마다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답답하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에 분노한다. 치솟는 밥상 물가에 한숨이 난다. 오늘도 만화경 속 세상엔 웃을 일이 없는 걸까.

나뭇가지에 움튼 새순처럼 우리의 입가에도 봄이 왔으면 하는 기대와 희망은 다른 쪽으로 고개를 튼다. 이 글이 신문에 실리는 날, 모두의 눈과 귀는 대통령 당선자에게 쏠려 있을 것이다. 새 출발은 설렘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기에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 새 대통령에게 소망을 품게 된다. 우리의 삶에도 웃을 일이 많았으면. 나도 아버지처럼 호탕하게 웃고 싶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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