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림자를 털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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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애월읍 광령 저수지에 청둥오리가 사라졌다. 새까맣게 떼를 지어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유유히 유영하던 청둥오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겨울 끝자락을 여미는 바람만 쓸쓸하게 분다. 웃옷 자락을 여미며 저수지 저편을 바라본다.

눈 덮인 한라산 그림자가 맑고 푸른 저수지 한가운데 오롯이 비친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은 어느새 녹아 거울 같은 저수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다. 지난 겨울 초입에 북쪽에서 찾아왔던 철새들이 돌아가는 시절이 되었다. 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내 몸은 여전히 한겨울인데 청둥오리들은 봄기운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북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람의 힘이란 얼마나 미약한 것인가. 게다가 문명의 이름으로 우리는 몸속에 숨어있는 우주의 신비를 막아버렸다. 질박함의 근원이 막히니 시대는 날로 교활해진다.

봄빛은 아마 한겨울부터 서서히 천지를 바꾸고 있었는데, 우리는 고작해야 어느 날 아침 발견한 봄꽃의 개화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뿐이다. 시간의 흐름에는 분절이 없다. 언제부터 봄인지, 어디까지가 겨울인지,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추위와 따스함이 교차한다. 봄의 난만함으로 가득한 날씨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폭설이 퍼붓는다. 하긴 우리 삶도 그와 같은 게 아닌가. 힘든가 싶으면 어느새 평탄한 길이 보이고, 한가한 삶인가 싶은 면 뜻밖의 고난이 앞을 가로 막는다. 우리가 만들어온 시간은 아름다움과 추악함으로 짜여져 있다. 자투리 천조각을 모아서 만든 보자기와 같은 게 이 세상이다.

보자기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신산한 삶의 끝자락에서 버려진 것이었지만 이들이 모여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자신의 남루한 무늬를 잇대자 어느새 아름답게 아롱진 보자기가 되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만들어냈는지조차 잘 모를지라도, 아름다운 보자기는 우주의 한편을 곱게 지키는 것이다. 내 삶이 비록 초라하고 간난함으로 가득차 있다 하더라도, 좋은 인연으로 다른 이들과 만나 서로가 돕고 서로를 기대고 서는 순간 천지는 온통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과 같이 활기찬 삶으로 가득할 것이다

얼마 전 볼 일이 있어 낮에 잠깐 시내에 나갔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시 민속오일장날이었다. 큰 길 가녁의 보도는 물론 샛골목 사이사이로도 장이 서고 있었다. 일부로 어슬렁거리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장구경을 했다. 안파는 물건이 없어 보였습니다. 온갖 공산품이 알록달록 많이도 쌓여 있었지만 눈길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남새, 나물, 꽃, 나무들로 향했다. 위험한 차도 옆에서 좌판도 없이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보시기, 양재기에는 달래, 냉이, 쑥은 기본이고 돌나물, 돌미나리, 봄나물들이 소복소복 복스럽게도 담겨 있었다. 돌미나리 향기가 코에 스치는 듯했다. 제주시내 곳곳에 봄은 사뿐사뿐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을 털어내고 좋은 봄 맞으세요. 가능하면 어디쯤 봄이 오시는지 길도 한번 나서 보시구요.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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