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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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1970년대 배고팠던 시절,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터진 고무신으로 공을 찼다. 백호기 축구대회 출전을 앞두고 마을 청년회가 축구공을 기증했다. 주민들은 돈을 모아 선수들에게 운동복을 입혀줬다.

제주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남초등부 경기만 열렸는데도 도민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관심을 보였다. 그 시절 백호기 대회 우승은 마을의 잔칫날이었다.

1971년 10월 30일 제주일보(당시 제주신문)가 창설한 백호기 축구대회에서 당시 참가 팀은 초등부 5개 팀에 불과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백호기는 제주에 축구 붐을 일으켰다. ‘동네 축구’ 수준이었던 제주 축구를 전국구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2010년 40주년을 맞이한 백호기 축구대회에서 당시 강영호 하귀초등학교 교장을 인터뷰했던 내용이다.

그는 도내 초등학교마다 축구부 창단을 이끌어 낸 축구계의 원로다.

그는 1982년 제주서초에서 근무할 당시 최진철을 눈여겨봤다. 당시 4학년이던 최진철은 육상선수였다. 부모를 설득해 최진철을 축구선수로 전향시킨 후 백호기에서 뛰게 했다.

최진철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국가대표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신병호를 비롯해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었던 지동원·홍정호도 백호기가 낳은 스타플레이어다.

황호령·임창우·심영성·이종민·오장은·정성룡·오승범·강민혁 등은 백호기 꿈나무에서 출발해 K리그에 진출하거나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함성과 함께 등장한 응원구호 ‘꿈★은 이루어진다’는 전 세계에 주목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응원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축구 경기 열기보다 더 뜨거웠던 백호기 고교 응원전 영상도 유튜브 등 SNS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Human LCD’(인간 액정디스플레이)라는 댓글을 올리며 엄지 척했다.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낸 환상적인 카드·보디 섹션은 호랑이의 눈이 점점 커지고, 청룡이 여의주를 품고 승천하며, 탱크·군함·비행기가 불을 내뿜고, 파도 속에서 배가 나아가고, 사자가 포효를 했다.

학생들의 군무로 연출한 환상적인 카드·보디 섹션은 골 장면까지 놓치게 만드는 등 관중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2022 제주일보 백호기 전도 청소년축구대회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제주종합경기장 주경기장 등에서 열린다.

고교 시절 목이 쉬도록 응원가를 부르며 젊은 패기를 발산했던 4050세대들은 그날의 함성과 전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2번째 전사들이 오라벌을 달구었던 응원가와 구호는 수 십년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다. 그 학교의 역사이자 전통이기 때문이다. 동문들이 모교 행사나 모임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결속을 다지는 이유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올해 백호기 대회에서는 과거의 응원전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

하지만 많은 도민들은 패기 넘쳤던 고교생들의 응원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80~1990년대 많은 학생들은 교련복을 빳빳하게 풀칠하고 탄띠 버클에 광을 내며 백호기를 기다렸었다.

요즘 코로나19로 모두가 무기력해지고 의기소침해졌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고 싶다. 짜릿한 동점골과 극적인 역전골을 보고 싶다.

벚꽃이 필 무렵, 백호기의 감동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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