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풍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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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요즘 한국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1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내적인 갈등과 분쟁으로 주저앉던 중에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시기에 1894년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오게 된다. 중국에서 사역하던 알렌이라는 의사가 조선으로 옮겨 오면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상해에서 배를 타고 찾아오게 되는데 당시의 항해에 대하여 이런 기록을 남겨놓았다.

알렌이 탄 배에는 중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일하던 중에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있었다. 전통적 종교심 때문인지 조선인들은 어떻게든 동료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오려고 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료의 시신 몇 구를 배에 실어 갑판 한 편에 밧줄로 고정시켜 놓았다. 그런데 강한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면서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시신을 붙들어 맸던 밧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요동치는 갑판 위로 시신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서 시신들이 갑판 저편으로 몰려갔다가 이편으로 몰려오곤 했다.

선실의 창 너머로 갑판을 내다보면서 알렌은 조선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며 기도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선교사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이 나라는 온 세상의 관심을 모으는 나라가 되었다. 한류와 K팝이 유명하고 IT 분야에선 단연코 앞선 나라가 되었다. 조선이나 자동차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한다.

정치·경제·종교·사회·사상 여러 분야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갈등과 분쟁이 배를 요동치게 만드는 풍랑 역할을 했다면, 이 나라 백성은 요동치는 역사의 갑판 위를 이리저리 구르면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반대급부의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정치·경제 분야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교 분야 역시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 문제로 갈등하고 분쟁하는 사람은 이 교회가 나의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어려운 상황을 떠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아서 분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갈등과 분쟁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갈등과 분쟁이 깊어지고 길어지는 동안에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깊이 있게 깨달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고난을 통하여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은 백성이 있는 만큼, 이 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인 방향으로 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한때는 풍랑이는 갑판 위에 시신처럼 뒹굴던 백성들인데, 이제는 온 세상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백성이 되어 간다.

풍랑이는 바다와 요동치는 배와 이리저리 뒹구는 분쟁과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풍랑에 휘둘리면서 그 갑판을 뒹굴면서 분쟁과 갈등을 헤치면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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