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의 역사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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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논설위원

겨울 추위가 한때 느슨해져서 따사로운 봄 날씨가 된 지난 15일 강제노동피해의 유적 탐방을 겸해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나오시마(直島)를 찾았다. 나오시마는 가가와(香川)현 다카마쓰(高松)시의 북쪽 13, 페리로 50분 거리에 있는 주위가 16, 제주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조그마한 섬이다. 인구는 3000명 남짓으로 일반 도민이 사는 섬의 남쪽은 빈집을 다시 고쳐 옛 가옥을 재현한 집 프로젝트나 현대 아트를 구사한 마을 만들기로 알려져서 그날도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한편 섬의 북쪽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나오시마 정련소(精錬所)의 대규모 공장과 관련 시설, 공장 관계자의 숙소 등이 차지하면서, 섬의 남북에서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 광업으로 1990년에 사명 변경)은 일본 최대의 비철금속 메이커로서, 2018년의 대법원판결로 강제징용 희생자에 대한 손해 배상을 선고받은 미쓰비시중공업과 같은 미쓰비시 그룹의 대표적 기업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 자체도 강제노동 피해 손해 배상 소송의 피고(20193월 소송제기)가 돼 있는 전형적인 전범기업이다.

나오시마 정련소에서도 많은 징용공이 강제노동에 시달린 사실이 밝혀져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나오시마의 조선인 강제노동 실태를 오랜 세월에 걸쳐 조사해 온 조도 다쿠야(浄土卓也)에 의하면 소위 모집에 의한 피연행자1641, ‘알선에 의한 피연행자146명으로 자료상 확인된다고 한다(『朝鮮人強制連行と徴用 ; 香川県三菱直島精錬所と軍事施設』社会評論社). 1944년부터 감행된 문자 그대로의 징용으로 동원된 수자 기록은 확인을 못 하지만, ‘모집노동자에 관해서도 30% 남짓의 노동자가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조선에서의 노동자 사냥이 얼마나 강압적으로 행해진 것인지를 여실히 나타내는 것”(앞의 문건)이라고 한다.

2017년 나오시마 정련소는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자사의 1세기의 발걸음과 현황을 담은 동영상을 작성해서 온라인상에 공개했다. 순동·순금의 생산이나 재활용에서 세계 톱클래스의 기술력과 생산량을 자부함과 더불어 매년 1씩의 식수 운동 등을 벌이고 지역사회에 공헌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나오시마 정련소가 발행하는 어느 자료에도 강제 징용의 역사에 관한 기술은 찾아볼 수 없다.

식수에 관해서도 과거 정련소가 내뿜은 연기나 배기가스에 의해 산림이나 논밭이 시들어서 주민들이 피해 보상이나 배기 연해 방지를 회사 측에 요구해 온 역사가 있다. 지금도 공장 주위 곳곳에서 흙땅을 노출한 벌거숭이산들이 눈에 띈다. , 식수는 사회공헌은커녕 자신들이 초래한 자연파괴를 수습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오시마 정련소는 식민지 지배나 공해 배출이라는 부()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미쓰비시라는 일본 거대기업 집단의 역사윤리의 결여를 상징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탄생하면서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의 역사문제를 둘러싼 정책 기조가 누그러져서 한일 관계의 호전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엇갈린 한일 외교 관계의 타개는 재일 한국인에게도 너무 절실하다. 하지만 역사윤리를 결여한 정부나 기업과 안이한 타협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한일 간의 진실 어린 화해를 해치는 일이라 하겠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역사문제에 관한 원칙에 충실함을 바라 마지않는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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