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카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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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제주문인협회장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향나무로 만든 목부작과 받침, 가구를 보았다. 학교에서 잘라버린 향나무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학교 교정의 가이즈카 향나무를 제거한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가이즈카 향나무가 자라는 학교에서 향나무를 교목으로 정하면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의 향나무로 오인될 수 있어 제거해야 한다는 기사였다. 한동안 친일청산, 토착왜구 같은 말이 회자되면서 향나무뿐만 아니라 친일 작사가(문인)나 작곡가들이 만든 교가를 교체하는 일이 일어났고, 만주환상곡 등을 지은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귀화한 관상식물이 309종이라는데, 유독 가이즈카 향나무를 배척하는 이유는 36년의 식민지배 때문이며, 반일감정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본에서 귀화한 식물을 배척한다면 일본에서 건너온 온주밀감을 비롯한 귤나무들, 한라산 곳곳의 삼나무들, 전농로의 벚나무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그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식물까지 적대시 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까. 가이즈카 향나무를 교목을 정한 학교라면 교정에 있는 다른 나무로 교체해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식물은 사람이 옮기지 않더라도 바람이나 새들의 영향으로 먼 곳까지 퍼져나간다.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로 배나 비행기에 편승해서 씨앗이 퍼져나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문화 또한 그러하다. 최근에 한류가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음식, 영화 등의 한국문화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상이 되었고, 그 덕택에 한글까지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한동안 투기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목포시 구시가지에는 일본풍의 주택들이 많고, 그 집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산 등 일제강점기에 개항한 항구가 있는 해안도시에는 일본풍의 주택들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일본의 식물이나 문화를 없앤다면 일본풍의 역사문화를 가진 집들도 철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과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일본에서 한류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이즈카 향나무는 그대로 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1970년대에 일본말 쓰지 않기 운동을 펼쳤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양동이나 손톱깎이, 바지, 주머니 등 명사 중 일본어가 많았다. 그리고 제주사투리 쓰지 않기를 강조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본어로 부르던 명사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나 우리 말로 사용하게 되었고, 제주어 보존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바람직스럽다. 우리나라의 주체성을 위해 정신교육 차원에서 친일청산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너무 억지로 흔적을 지우는 건 불편한 일이다. 교육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좋은 일이며, 무턱대고 아픈 역사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제 잔재를 교육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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