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선인들의 오색빛깔 삶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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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다시 찾은 월라봉
이두어시 마을 오색토굴서
집 단장 위해 오색토 채취

구들장 돌 캐던 군산 채석장
열전도율 높고 평평해 요긴

농업유산 가치 있는 근대유적
솔목천 상류 대평리 저수지
월라봉 이두어시 마을에 있는 오색토굴 내부 풍경. 여러 향토지와 주민들에 따르면, 벽지가 없던 시절 이곳에서 파낸 오색토와 백토로 집의 벽과 방을 단장했고, 해방 후에도 오색토 등을 채굴하는 시설들이 월라봉 주변 여러 곳에 있었다고 한다.
월라봉 이두어시 마을에 있는 오색토굴 내부 풍경. 여러 향토지와 주민들에 따르면, 벽지가 없던 시절 이곳에서 파낸 오색토와 백토로 집의 벽과 방을 단장했고, 해방 후에도 오색토 등을 채굴하는 시설들이 월라봉 주변 여러 곳에 있었다고 한다.

질토래비에서는 앞서 17회에 걸쳐 월라봉에 깃든 역사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에 덧붙여 소개되어야 할 비경과 비사가 있다는 지역인사(김형필 직전 안덕면장)의 제안으로, 질토래비에서는 다시 수차례 월라봉에 있는 오색토굴과 백토굴, 아리랑 고개 인근 협곡에 있는 저수지, 그리고 군산 서쪽 중허리에 있는 채석장 등지를 탐사했다.

▲월라봉 이두어시(泥頭於時)에 있는 오색토굴과 백토굴 탐사

지난여름 찾지 못한 오색토(백청적녹갈색)굴과 백토굴을, 김창남 대평리장 일행의 안내로 탐사했다. 월라봉 동쪽 평지에 24가구가 살았던 이두어시 지경(감산리 819번지)에 있는 오색토굴 입구는 수림에 가려져 지나쳐가기 쉬운 곳이다.

좁다란 입구를 통해 오색토굴로 기어 들어간 일행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기어 다니며 탐사를 했다. 오래전 선인들이 오색토와 백토를 120여 m 파 들어가 채취하다 생긴 지하 공간이 오색토굴이고 백토굴이다.

천장 높이가 50㎝에서 2m 정도인 굴 내부는 갱도 받침목도 설치하지 않은 채 오색토를 파내던 선인들의 삶의 현장이다. 오색토굴의 비경을 본 일행들은 근대 산업유산으로 지정될만한 하다며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오색토굴의 좁다란 입구. 지형이 입구보다 높고 수림에 가려져 있어 찾기 쉽지 않다.
오색토굴의 좁다란 입구. 지형이 입구보다 높고 수림에 가려져 있어 찾기 쉽지 않다.

흑굳밧이라 불린 밭 주변에 있던 샘에서는 흙을 채굴하다 변색된 신발과 연장 등을 씻었다 한다. 오색토굴에서 10여 미터 왼쪽에는 백토굴 입구도 있다. 입구가 돌 등으로 메워져 있는 백토굴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러 향토지와 주민들에 따르면, 벽지가 없던 시절 이곳에서 파낸 오색토와 백토로 원근 마을들에 들어선 집의 벽과 방을 단장했고, 해방 후에도 오색토 등을 채굴하는 시설들이 월라봉 주변 여러 곳에 있었다고 한다.

18세기에 편찬된 증보 탐라지(增補 耽羅誌)에는 이두어시 마을이름이 진흙 이(泥)가 들어간 泥頭於時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이두어시라는 이름은 마을 인근에서 채취한 진흙과 관련하여 명명된 지명으로 보인다.

▲구들장 돌들을 캐내던 채석장

월라봉 이두어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유헌(1939년 생) 현 안덕면 노인회장의 안내로, 구들장 돌들을 캐내던 군산 지경에 있는 채석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채취한 조면암 판석은 열전도율이 높고 평평하여 대정현 전역으로 실려 가 구들돌로 온돌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채석장 주변 밭에는 당시의 돌들로 쌓은 담장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월라봉 여러 곳에도 있었다고 하는 채석장에서 채굴된 조면암 돌들은 구들장 판석을 비롯하여 온돌과 물을 가두는 저수지 제방용 등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림에 가려진 수 킬로미터의 월라봉 계단식 담장도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조면암 등으로 쌓여져 있다.

동행한 양재현 안덕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수림에 가려진 담장길이 7소장 등지에서 길러진 수천 마리의 말들이 당캐(唐浦)인 대평포구를 통해 외지로 실려 갔던 공마로(貢馬路)로 추정되는 길이기에, 이 길을 역사문화가 깃든 길로 가꾸려는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1960년 전후 만들어진 솔목천 저수지 제방.
1960년 전후 만들어진 솔목천 저수지 제방.

▲‘감대 아리랑 고개’ 계곡에 들어선 대평리 저수지

제주에는 유명한 아리랑 고개가 두 곳에 있다. 제1횡단도로와 이곳 감산리와 대평리 사이의 고개가 그곳이다. 군산과 월라봉 사이에 있는 계곡 등성이를 따라 길을 낸 것이 감산대평 아리랑 고개이다. ‘감대 아리랑 고개’를 넘다 보면 바다와 계곡이 어울리는 절경도 만난

다.

대평리 저수지는 아리랑 고개 바로 서쪽, 솔목천이라 부르는 계곡 상류에 있다. 이곳에는 주변에 산재한 조면암으로 솔목천의 협곡을 막은 저수지 제방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1960년 전후하여 쌓아졌다는 저수지는 농업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로와 수문을 열고 닫던 쇠운전대도 그대로 있다. 물을 가뒀던 저수지 안에는 도랑 사이로 여전히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미나리도 자라고 있다.

어린 시절 이곳을 통해 등하교를 했다고 하는 김유헌 노인회장은 저수지 제방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온통 논밭이었다고 한다.

월라봉 서쪽에서는 안덕계곡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가 1830년대에 이미 행해진 것으로 보아, 월라봉 동쪽인 이곳에서도 그즈음에 여기저기에서 솟거나 흐르는 물을 가두어 논농사를 지은 걸로 추정된다.

대평리지(2020)에는 사라호 태풍이 불어온 1959년 이후‘저수지 추진’이란 기록과 저수지 물을 끌어와 논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저수지 추진이 기존의 저수지를 보수한 것인지, 새로 추진한 것인지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저수지였던 계곡에서는 지금 경작행위가 일부 행해지고 있어 보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논밭 일색이던 솔목천 공원 산책

최근 양재현 안덕면 주민자치위원장 등과 수차례 발길이 뜸한 곳에 무성해진 수풀을 헤치며 월라봉 도처를 탐사하였다.

협곡에 조성된 저수지 제방 주변에서 보는 경관 또한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절경이다. 이런 길을 헤치며 가다가 만난 곳이 솔목천 계곡에 조성된 공원이다.

솔목천이라 불리는 계곡으로 들어선 일행은 눈 앞에 펼쳐진 나무데크와 잘 조성된 공원 여기저기를 거닐며 환호성을 질렀다. 크게 소리 질러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이곳은 한적한 곳이자 비경과 비사가 가득한 곳이다.

솔목천 공원은 1980년대까지도 상류에 있는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다 논밭을 일구고 벼를 경작했던 현장이다. 이곳 솔목천을 비롯한 대평리 일대가 온통 논밭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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