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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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계절이 몸 푸느라 사방이 분주하다. 훌쩍 올라선 기온에 가지마다 쌀알만 하던 꽃눈들이 앉은자리 비좁다며 자리다툼으로 야단들이다. 빼곡히 들어찬 꽃잎들 웅성거리는 계절 안 곳곳, 여문 햇살에 한껏 몸피 키운 꽃들 자지러지는 소리로 계절의 허리가 다 휘어지겠다.

거실 벽, 봄꽃 왁자하게 핀 달력 속 화사한 색감에서도 물씬 꽃향기를 뿜어낼 것처럼 환하다. 서둘렀다. 갓 돌 지난 손주 녀석 돌보러 갈 채비로 거울 앞에서 대충 빗질하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다.

제 부모 품에 있다가 복직하는 바람에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 적응시키느라 한나절씩 어린이집을 보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 아이가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그 반 아이들 모두 어린이집을 당분간 못 가게 되었다 한다. 갑자기 받은 연락에 아들 내외도 난감해하다가 연락이 온 것이다. ‘가마’고 대답을 했다.

자주 봐서 그럴까. “우리 까꿍이!” 하고 부르자, 얼른 안겨드는 모습은 언제 봐도 좋고 늘 아꼽다. 이래서 손주를 두불 자손이라 함인가. 콩콩콩 딛는 발자국 따라, 온 신경이 아기 움직이는 방향을 쫒는다, 걸음마 뗀 지가 얼마 안 돼, 착지는 서툴고 마음만 바쁘게 움직이는 통에 바라보는 마음은 늘 위태위태하다,

며느리가 출근하며 준비해 둔 간식이며 점심을 챙겨 먹이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양보다 흘려버리는 게 더 많다. 게다가 숟갈질도 못하면서 혼자 먹겠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흘린 음식으로 사방팔방이 난장판이다. 목소리를 깔고 “이 녀석~” 하며 그 행동을 제지하자 눈치를 살피는 모양이다. 샐쭉해지는 모습에 순간 입에서는 연신 미안하단 말을 반복하고 있고 이내 두 팔로는 손주를 꼬옥 끌어안고 있다.

한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옷을 두 번이나 갈아입혔다. 열어 둔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람의 결이 제법 순하다. 거실까지 발 들인 햇살이 아까워 얼른 겉옷 챙겨 입혀 가까운 해안가 공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돌 지난 아이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비로움 그 자체인가. 몇 걸음 걷다 넘어지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파르르 돋은 풀잎 촉감이 주는 낯섦에 한참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장난질이다. 그 끝의 간지럽히듯 하는 감촉이 무척 좋은가 보다. 반복하며 매만진다.

보들보들한 머리칼 나풀거림을, 바람이 건네는 촉감을 몸으로 익히느라 바람 방향으로 입을 크게 벌려 온통 봄을 먹는다. 속살거리는 바람살이 버거웠던지 실눈처럼 뜨다가 온전히 뜨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천진무구다. 공원이 해안과 맞닿아 있어 바닷물 출렁이는 모습이 손주 눈에 잡혔다. 그 출렁임을 잡고자 손을 한껏 뻗어보지만 헛손질하느라 쥐락펴락하는 손동작들이 앙증맞다. 어느 봄꽃이 이보다 더 고울까.

파란 하늘 저편으로 반짝이며 소리로 다가오는 물체를 보았다. 고개를 들어 그걸 잡기라도 할 듯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더니 이내 놓쳤다. 시선만 비행기 따라 멀리로 다녀온다. 잎샘 바람 찬 기운에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낯선 외출에 지쳤나 보다. 이내 잠든다.

저녁에 집에 와 대충 정리하고 창문을 닫으려는데 비인 듯 안개인 듯, 고요로 흩뿌리는 게 있다. 봄이 데리고 온 이슬비다. 베란다 앞, 나뭇잎에 내려앉은 자리가 불빛에 반짝였다. 손주와 같이 보낸 시간이 건네는 선물일까. 이슬비에도 손주한테 했듯이 다정하게 인사했다. 이슬비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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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사랑 2022-03-24 18:04:08
너무 가슴에 와닫고 공감가는 글이네요! 훈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