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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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코로나19 시국에 대입하면 ‘적당한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에게는 범려와 문종이라는 두 명의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구천은 이들을 스승처럼 파격적으로 예우했다. 그런데 하루는 범려가 문종에게 이런 말을 한다. “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이 튀어나와 매의 눈초리에 이리의 걸음을 하는 상(相)이오. 만일 그대가 왕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왕은 장차 그대를 죽이고 말 것이오. 그러니 어서 이곳을 떠나 살길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소.”

하지만 문종은 범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범려는 할 수 없이 혼자서만 관직을 사퇴하고 월나라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려의 말대로 구천은 문종에게 칼을 내려 자결을 명했다.

범려는 월왕이 어려울 때 멀리하지 않고, 월왕이 뜻을 이뤘을 때 측근처럼 행동하지 않았기에 토사구팽을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특히 가까울 때를 조심해야 한다. 사소한 일로 틀어지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하는 쪽에선 충격이 크다. 내상이 하도 깊기에 ‘절친’에서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구이경지(久而敬之)라는 말이 빛을 발한다. 오랫동안 사귀어도 항상 조심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해선 안 된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하면 그 관계를 원만히 지속할 수 없다.

인간관계가 어긋나면 개인사로 치부할 수 있지만, 힘을 가진 쪽이 너무 밀접하면 결국 유착(癒着)을 낳는다. 이는 원래 의학적 용어로, 서로 떨어져 있는 피부나 막 등이 염증이 생겨서 서로 들러붙는 것을 말한다.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할 생물체의 조직이 섬유소나 섬유 조직 따위와 붙어 버리면 치료가 힘들어진다.

정치권과 대기업이 호형호제하면 정경유착(政經癒着)을 키우고, 권력과 언론이 끈끈하면 ‘언론장학생’이란 권언유착(勸言癒着)을 불러온다. 만물은 주변과 어느 정도의 거리와 틈을 두고 공기 등을 통하게 해야 부패를 막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했다. 대선 이후 19일 만이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신구 권력만큼은 ‘불가근’의 틀을 깨고 서로 다가갔으면 한다. 그래야 국민 통합을 외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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