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과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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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저 바닥에 누워 소리치고 있는 여자는 누구예요?”

글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래전부터 혼자 한참 외치다 춤추다 드러누워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어요.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어요.”

옆에 휠체어에 탄 남자는요?”

아마 남편 같아요.”

제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넓은 건물 안이다. 근무 중인 여직원에게 들어보니 자기네들도 어쩔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 중년의 여자는 우리로서는 대단히 민망스러운 난처한 옷차림으로 색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것이다. 옆에 있는 다른 여직원은 가여운 생각이 들어서 드링크를 갖다 주었더니 고맙다고 잘 받더라고 한다. 그리고 휠체어의 장애인 남자는 자기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더라고 한다. 나도 가서 도움이 필요한지 일으켜 주어야 할 상황인지 가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직원들이 나서지 말라고 한다. 서너 명의 경비가 가서 일으키려 하자 자기 몸에 손을 대면 바로 추행으로 고발할 것이라고 천정이 떠나게 소리쳤다는 것이다.

10여 분이 지나자 안전 요원들 네 명이 주변에 나타났다. 그러자 여자는 더 큰 소리로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며 가까이 오면 가만 안두겠다고 소리 지르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다. 잠시 후에 경찰들이 왔다. 경찰도 어찌할 수가 없는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 거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외처 대니 감히 가까이 갈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고 관리자를 보내서 사과하라고 계속 외친다. 관공서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또 관계자들이 10명 가까이 왔지만 이 여자 가까이 접근할 염두를 못 낸다. 여자는 책임자를 데려 오라고 계속 외쳐댄다. 할 수 없는지 모든 경비원들과 경찰들도 한 시간가량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나는 세 시간 정도 이곳에 일이 있어서 계속 머물렀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남자가 사람들 틈에서 휴대폰을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계속 촬영을 하고 있어 보였다. 여자는 여전히 고성으로 어린 시절, 출신, 현재 생활, 세상 불평 등을 크게 외치며 계속 불만의 함성을 질러댄다.

제풀에 지쳤는지 이번에는 일어서 촬영대 앞에서 한참 춤을 추다가 페트 공병으로 허벅지를 두들겨 박자를 맞추며 각설이 품바타령을 구성지게 부른다. 그러다 의자에 한참 앉아 주변을 살피더니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거의 세 시간 동안이나 휠체어에 앉아 이상한 여자와 보조를 맞추던 남자가 벌떡 일어서 빠른 걸음으로 문밖을 향한다. 여자와 촬영 감독 같은 사람도 카메라 삼각대와 휴대폰을 접고 따라 나간다. 문을 나서면서 여자는 옷을 덧입고 또 헝클어진 머리도 위로 쓸어 올려 갑자기 변신을 하고 재빨리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어안 벙벙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옆에 있는 다른 직원이 설명한다. 요즘 유튜브 같은 SNS에서 먹방, 바보짓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 올려서 조회 수에 따라 돈을 버는데 아마 저 팀도 대중 앞에서 거짓 연기를 하면서 그것을 촬영해서 내보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경비원과 경찰까지 동원하게 해 놓고 그들이 지쳐서 가버리자 다시 한바탕 쇼를 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과 주변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몰래 촬영하고 장애인을 가장하고 눈물까지 흘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사라지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거짓 연기에 공권력이 완전히 무력화되는 순간들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분노에 가득 차 말한다. “그들은 주연이었고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조연으로 이용했다.

정말 세상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경찰관들도 감당하지 못할 가증스러운 외침과 몸짓, 그리고 광란에 가까운 연기들, 그리고 무슨 기적이 일어난 듯 갑자기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서서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는 이 모습들. 돈이 된다면 무엇이나 저지르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이 시대의 광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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