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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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신단수

굿은 무당이 접신을 시도하는 행위이며 그들만의 자부심이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어도 난이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가장 기본인 작두를 타야 비로소 인정받는다.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알기에 절대 겸손해야 하며 자랑은 금물이다.

깨진 유리를 밟기도 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돌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지만 이는 각자가 모시는 신의 선택이다.

우리네 풍습에 귀양 내다가 있다. (천도재) 요즘 젊은 시대는 미신이다 구식이다 등한시 하지만 망자와의 최소한의 이별 인사이다.

자살이나 타살이 아니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보일 것이고 생전에 성격 그대로 주고받는 대화이다.

남아있는 식구의 눈물이 천국을 약속의 의미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 반성이 우선이다.

신세한탄은 길어지고 짧아지고 부탁도 있지만 이내 부질없는 미련임을 알아낸다. 미안하다 고맙다 입에 발린 말보다는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며 따지자 하는 시비 충분한 이해보다는 체념이고 받아들임이다.

허례허식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유혹은 진짜가 아닌 거짓이다. 의심을 가져보자.

먼길 온 분은 한숨부터 시작이다. 남편이 오랫 기간 병석에 누워있다 보니 혼자 벌어 살림하고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힌단다.

사는 형편이 이렇다 보니 나쁘다 하지 말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나겠냐는 질문이다. 묻고 답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일단 알았다 하고 돌려보냈는데 얼마 후 장례를 치렀단다.

살갑지는 않았어도 부부였고 연민이라 저승 가는 길을 편하게 해주고 싶단다. 책임보다는 겉치레 보여주기 모양이다.

평온한 화해를 원했지만 돌아온 건 원망이다. 어느 순간 잘못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음은 물론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꺼낼 때는 차갑고 냉정했다.

아녀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소홀했고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꾸지람은 혀 차는 타박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지나고 없는 과거는 땅으로 묻어내고 용서를 비는 자리인 만큼 그쯤 하자 만류에 아니란다.

알아도 모르는 척 참고 인내했는데 분이 풀리지 않는단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앙갚음도 하겠단다.

한참이나 어르고 달래야 했고 몇 가지 조건을 달고서야 상황을 종료했지만 남은 건 속상함이다.

긁어 부스럼이 아니었나 뒤늦은 후회였지만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그들만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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