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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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도로(道路)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차가 다니는 길은 차도(車道)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인도(人道)다.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천도(天道)는 천체가 움직이는 길이다. 도(道)는 이렇게 무언가가 다니는 길이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인도를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 천도를 모든 것이 따라야 할 이치라고 한다. 길을 따라 걷는 이에게는 그 길이 걸어갈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길에서 흔히 들었던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은 “살아갈 방향을 아십니까?”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길이라는 말은 인생의 이치와 방법이 된다.

가보지 않았던 곳, 모르는 곳으로 가려면 길부터 찾아야 한다. 요즘에는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 목적지를 찾는 많은 길이 있다. 이 가운데 무엇을 택하더라도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교통상황 등이 실시간으로 반영된 여러 선택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때때로 귀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처 갖추지 못하였을 때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투정이다. 하기는 그런 게 없어도 괜찮다. 어림짐작으로 길을 찾거나, 일단 아는 데까지 가서 물으면 된다. 그러니 길로 나서야 한다.

“난 저 길 저 끝에 다다르면 멈추겠지, 끝이라며.” 2016년에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에 실린 “길”의 가사다. 가수 김윤아가 부른 이 노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길로 가야 할지.”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도 끝은 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가사는 과거에서 누군가가 보내는 무전을 받은 경찰이 장기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 과거의 사건이 바뀌고, 그렇게 바뀐 과거에 현재가 영향을 받는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시간의 흐름을 ‘길’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길이란 그곳을 먼저 걸었던 이들이 만든 것이다. 길이 있다는 것은 나보다 앞서 걸어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누군가는 그 길을 통해서 어딘가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곳이 어딘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길로 가야 할지를 망설이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걷고 있는 인생이라는 길도 그렇다. 그 누구도 내 갈 길을 가르쳐줄 수 없다. 하기는 누군가가 걸었던 것과 꼭 같은 길로는 갈 수 없다. 그 길은 그때와는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 걸어오던 길을 새삼스레 묻는 건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잘 걸어가고 있는지 되묻는 것이다. 길을 묻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러므로 문득 고개를 들어 길을 찾게 된다면, 계속 걸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면 된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꽃샘추위에도 봄이 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봄이 왜 이래!’라고 되묻는다. 그게 잘 걷고 있는 길을 되묻는 이유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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