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속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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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증기자동차 운전사의 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앞쪽으로 걸어가며 행인이나 마차에게 위험을 알려야 했다. 1865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붉은 깃발 법’의 내용이다.

이 법의 진짜 문제는 조수의 걸음보다 느린 자동차 최고 속도였다. 시내에서는 시속 3㎞, 교외에선 시속 6㎞로 제한됐다. 당시 자동차는 시속 30㎞까지 달릴 수 있었는데도 규제 탓에 성인이 걷는 속도(시속 4㎞)와 비슷하게 달려야 했다.

나중에 최고 속도가 시속 20㎞까지 늘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영국이 가장 먼저 시작한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독일과 미국 등에 넘어가버린 다음이었다. 그로 인해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이 법은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많은 이들이 행정 규제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대통령마다 규제 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어디에서도 ‘성공작’이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규제개혁위원회는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목을 날렸던 ‘단두대’처럼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무현 정부는 ‘규제 덩어리’를 공격했고, 이명박 정부는 뽑아내야 할 ‘전봇대’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라는 표현을 썼다. 문재인 정부도 ‘규제 샌드박스제’를 시행했다.

이처럼 규제 혁파는 국정 어젠다에서 빠진 적이 없는 단골메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챙긴다고 했는데도 정권 초기에 반짝하다가 그때뿐이다. 어느 하나 용두사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얼마 전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글을 올렸다. 경제6단체장들과 만나서도 기업의 발목에 채워진 규제들을 ‘모래주머니’라고 지적,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우리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 부담은 141개국 중 87위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번에는 붉은 깃발을 뽑아내는 개혁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강골 검사였던 새 대통령이 빼든 칼은 다르기를 바란다.

개혁은 뜯어 고친다는 뜻이다. 규제 하나를 도입할 때 그 두세 배의 규제를 없애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관치주의에 규제 혁파의 DNA를 심어주는 것만 해도 큰 공적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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