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대신 산에 가 돌아오지 않은 어머니”…아물지 않는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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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서 만난 유족들

3일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이른 오전부터 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과 위패봉안실, 유해봉안실에는 여느 때처럼 유족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폭우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4월 3일은 화창하고, 따스했다. 

유족들은 준비해온 음식과 제주 등을 표석 앞에 가지런히 놓아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만난 김정남씨(78)는 4살 때 4·3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했다.

김씨는 “4·3 당시 함덕초등학교 운동장에 진압부대가 주둔해 있었고, 동네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군인들의 취사를 담당했다”며 “당시 우리 어머니는 취사 반장을 맡고 있었다고 가족들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산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한 어머니가 ‘치마를 입은 여자가 가면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아버지 대신 산으로 따라갔다”고 했다.  

김씨는 “이틀 정도 지나 옆집 아주머니는 무사히 귀가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는 아주머니 말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행불 수형인 가족 고광자씨(79)는 “내가 6살 때 아버지가 아픈 할머니를 뵙고 온다고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안다.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가 목포수형소에 수감돼 어머니가 면회를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고씨는 “4·3 때 집도 불에 모두 타버려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나, 동생 셋이서 암담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도 아버지가 2년 전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호적이 뒤엉켜 재심 신청을 못하는 유족들이 많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양순여씨(83)는 “내가 9살 때 서울에 있는 형무소에 오빠가 수감됐다. 12살이 돼서 오빠 면회를 갔는데 4년 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며 “4·3으로 오빠와 어머니와 가족들을 많이 잃었다. 사진 한 장 없고, 얼굴도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다.

이날 만난 유족들은 지난해 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추가 진상조사와 특별재심, 희생자 보상금 지급 등이 이뤄진 데 대해 “당연한 일”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호적 불일치로 가족 해체와 호적 정정 어려움 등의 문제가 뒤따르고 있어 정부가 시급히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에서 유족들이 제를 지내며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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