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서사(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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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그예 4월이다. 제주의 4월은 늘 새살 돋듯 되살아나는 서글프고 뼈아픈 역사의 잔재와 함께 시작된다. 강추위 속에서도 강렬히 선홍빛을 발하던 동백마저 서러움을 감추지 못해 툭 툭 피눈물을 흘린다. 만물이 소생하며 활기 넘치는 봄이련만, 4·3 사건은 그렇게 제주인들에게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 아픔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4·3 트라우마(trauma)’라 일컫기에 충분하다.

4·3을 직접 겪지 않은 베이비부머인 필자가 어찌 그 참상을 세세히 알 수 있으랴만, 선대로부터 넋두리처럼 전하는 끔찍한 이야기만으로도 적잖이 몸서리치게 된다. 이념의 노예가 된 자들이 벌이는 아사리 판에 영문도 모른 채 휘둘려 죽창과 총칼로 희생된 이들의 원통한 넋이 도처에 스며들어 있으니 이 어찌 서럽다 하지 않으랴.

근자에 들어 4·3 특별법 제정,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심 청구, 4·3 국가 기념일 지정, 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 결정 등이 이루어지면서 억울한 넋을 일정 부분 위로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후유증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갈 길이 먼 까닭은 도민들이 입은 상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50여 호의 작은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 어느 늦여름 밤이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예닐곱 군데나 있었다. 4·3 사건 때 갑작스레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기일이었음을 알 리 없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그럴 때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제사 음식을 나눠 먹고 놀이를 하면서 떠들고 뛰어다니기 일쑤였는데, 짙은 는개처럼 번지는 어른들의 한숨 사이로 아지랑이마냥 피어오르는 웃픈 유년의 기억이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잠시 잊힐 수 있지만, 결코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는 재해를 당한 후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 즉 심리적 외상을 일컫는다. 어쩌면 제주의 4월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등장하는 잔인한 4과 유사한 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참담한 현실을 잔인하다고 표현했지만, 기실 전체 문맥을 음미해 보면 거기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듯이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다는 역설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선택이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면서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약속이 허언이 아니기를, 제주의 4월에도 희망의 새싹이 강렬히 움트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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