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다시 4월,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4월이다. 제주의 4월은 애도의 봄이다. 오늘은 제주4·3 74주년, ‘피바람이 불던 4·3이 이제는 꽃바람 되어 불게 해 주세요’ 며칠 전부터 학교 현수막 거치대에 아이들이 만든 현수막이 걸렸다. 고사리손으로 한땀 한땀 글자를 새기고 동백꽃을 그리고 그림을 넣어 현수막을 만들었다. 기다란 등굣길에 줄지어 서 있는 아름드리 먼나무 기둥 사이에도 어린이회에서 만든 ‘4·3,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리’ 현수막이 아침을 맞이한다.

학교에서는 4·3 평화·인권교육으로 가족과 마을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4·3의 역사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갓 입학한 1학년도 4·3관련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빨강, 노랑, 초록 클레이로 동백꽃을 만들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소에도 아이들의 가슴에도 거리를 오가는 어른들의 가슴에도 동백꽃이 달렸다. 제주의 봄, 잔인한 4월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 4월, 동백꽃은 피어났다. 동백꽃은 나무 위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봉오리가 땅으로 통째 뚝 떨어져 두 번째 꽃을 피우고, 보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세 번째 꽃을 피운다. 그리움의 꽃, 기다림의 꽃, 4·3으로 희생된 영혼들이 차가운 땅속으로 소리 없이 스러진다. 죽어서 새살을 뚫고 올라온다. 아물지 못한 설움은 동백꽃만 보아도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이 난다.

74년 전 비극의 기억에 여린 동백꽃이 온몸으로 떨군다. 그날의 피비린내 나는 광풍을, 오름을 넘어 들판에 이는 바람아, 동백꽃 스치지 마라. 절벽에 피멍 든 검푸른 바다야, 너는 아네. 숨어드는 숨비소리로 절규하네. 한 세대가 지나서야 말 못 했던 통한의 삶을 사무치게 울어보네. 흐드러진 벚꽃과 노란 유채, 초록이 움터오는 아름다운 제주 봄날의 정점에 한 송이 붉은 꽃으로 우리 가슴에 세 번째 피어났구나.

‘4·3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 슬로건으로 74주년 4·3 추념식이 보상 등 희생자의 회복 의미를 담아 봉행 되었다. 윤 당선인도 보수 정당의 대통령으로서 첫 참석을 하였다. 미국 뉴욕에서도 혁명의 도시 보스턴에서도 처음으로 4·3 희생자 추념식이 거행되었다.

올해는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 갈등 대립 속에 목숨마저 빼앗기고 희생되고 불법 재판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들에게 74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 누명을 벗어 74년의 통한을 풀었다. 명예회복에 한 걸음 나아갔다. 수형인과 유족들은 꿈꾸는 것 같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묵은 한이 다 풀리고 숨 숙여 맘껏 울지도 못했던 통곡의 세월에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난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는 마련,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다랑쉬를 오른다. 이 아름다운 곳에 서러운 영혼들이 잠들고 있다. 발굴 30주년을 맞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풀어놓았다. 굴 밖으로 나온 그 날의 기억들, 증언본풀이를 보면서 희생자를 위로하는 비석이라도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완연한 봄은 기나긴 겨울을 견딘 끝에 서서히 다가온다. 평화와 상생의 따스한 손길로 4·3의 아픔은 꽃길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명예회복, 상생, 정명, 4·3의 대중적 확산은 우리가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아물지 않은 아픔의 역사, 제주4·3은 대한민국의 당당한 역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