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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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마을의 포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막으려 했지만, 선조들이 끝까지 고집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오고 있다. 설이 가까워지면 제관 구성에 골몰한다. 설이 끝나면 정월 초순에 제청에 입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기 복덕을 맞춰야 하고 건강한 기혼자라야 하며 집안에 우환이 없어야 한다.

오늘과 내일이 교차하는 시간 자시(子時 오후 11시~새벽 1시 사이) 삼라만상이 숨죽인 경건한 시간이다. 민가와 동떨어진 곳에 신령이 편하게 좌정할 수 있도록 눈에 익은 돌로 정성스레 주변을 잘 쌓은 제장은 비교적 널찍하다. 안쪽 북향에 아담하면서 엄숙한 제단을 마련했다.

병풍을 두른 중앙에 내장을 제거하고 통째로 깨끗하게 장만한 100㎏이 넘는 흑돼지가 머리를 동쪽으로 제단 위에 편하게 놓인 안쪽에는 벼, 조, 기장, 피로 산메를 지어 올렸다. 촛불이 가늘게 떨리는 사이로 향이 피어오르는 중간에는 일곱 가지 과일이 혼으로 쌓아 올린 석탑처럼 놓여 있다.

포신은 선하고 아량이 넓은 신령이 아니고 성질이 괴팍하고 재해를 관장하는 신이다. 제물을 정성으로 올려 ‘우리 마을에 재해를 내리지 말고 참아 주십시오’하고 포제를 한다. 허투루 하거나 정성이 부족하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성의를 다할 수밖에 없다. 마을 안 곳곳에 금줄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밭에 거름운반도 금한다.

제청에서 3일 동안 합숙하면서 제례를 익힌다고 연습을 되풀이하고 총연습까지 했는데, 제관들은 사모관대를 착용하고 이하는 도포에 유건을 착용해서 제 위치에 서고 보니 조금은 두렵다.

집례의 홀 기(진행 순서를 적어 놓은 것)가 찬 공기를 가른다. 홀 기에 따라 알 자(안내자)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초헌관이 관세하고 신위 전에서 집사가 건네는 잔과 축문을 올리고 부복하면 대축이 축문을 고한다. 독축할 때의 경건함은 신령뿐 아니라 주위 모든 초목이 경청하는 듯하다.

예전에 제장은 신령이 싫어하는 닭과 개 그리고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외지에 마련했지만, 제청은 민가에 마련했다. 지금은 3일 정성을 하지만, 당시에는 일주일 동안 정성했다. 설을 지내고 정월 초순의 살얼음 끼는 시기에 일주일 동안 우마 분으로 제관들이 지낼 수 있도록 방을 덥히고 물 끓이고 삼시 세끼 준비해야 하는 제청 주인의 노고와 정성도 지극했다.

지금은 개인의 거처와 다름없는 제청에서 합숙한다. 숙면하지 못해 괴롭기는 해도 오랜만에 남자들만 생활해 본다는 게 흥미롭고 아내 간섭없이 술잔을 주고받을 수 있어 불편 중 평안하다.

포제에 참여를 기회로 홀 기와 축문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자로 엮인 홀 기와 축문 내용을 모두가 알기 쉽게 풀이해 줄 것을 함께 참여한 김 교수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줬다. 포제를 마치고 10일도 채 되기 전에 조그만 책자로 엮어서 책상 위에 놓인 포제 해설집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포제와 제사·명절 때 조상 앞에 부복하여 가내의 무탈을 기원하는 마음은 다를 게 없다. 시대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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