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독립
벚꽃 독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1908년 4월 제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타케 신부는 한라산 해발 600m 관음사 인근에서 왕벚꽃을 발견했다. 그 표본을 채집해 독일 베를린대 쾨네 박사에게 보냈다.

쾨네 박사는 제주 왕벚꽃 표본이 일본 왕벚꽃을 대표하는 품종인 소메이요시노와 같다는 감정을 내렸다. 1932년 4월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 박사도 한라산 남쪽에서 자생한 왕벚나무를 발견하면서 사실상 제주가 왕벚꽃의 자생지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록만 있을 뿐 자생 왕벚나무 실체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한·일 ‘왕벚 전쟁’이 벌어졌다.

반세기 동안 지속된 논란 속에 1962년 4월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 명실상부 제주가 왕벚나무 원산지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일본의 식물학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 국립수목원이 유전체(게놈) 분석에 이어 분자 마커(염기서열 분석)까지 동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별개의 종(種)이라고 발표했다.

110년을 끌어온 한·일 ‘왕벚 전쟁’이 과학적인 검사로 다소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유전체 분석 결과, 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母系)로 하고, 제주 토종의 산벚나무 또는 벚나무를 부계(父系)로 해서 탄생한 1세대 자연 잡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왕벚나무는 모계가 올벚나무, 부계가 일본 토종인 오오시마 벚나무로, 제주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연구자들은 1912년 일본이 미국에 기증,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식재된 왕벚나무의 표본까지 수집해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제주산이 아닌 일본산인 것으로 확인했다.

결국, 국립수목원은 ‘제주의 왕벚나무는 제주 것(제주 자생종)이고, 일본의 왕벚나무는 일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는 왕벚나무란 종이 없음에도 국립수목원이 이를 자의적으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왕벚나무가 1700년대 도쿄 근처에서 자생종인 올벚나무와 오오시마벚나무를 인위적으로 교배해 만든 품종이라는 발표 역시 입증 근거가 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김 소장은 ‘일본 왕벚나무’임을 입증하기 위한 기준목으로 국립수목원이 도쿄대 부속식물원(고이시카와 식물원)에 있는 나무를 사용한 것도 명백한 오류라고 비판했다. 해당 나무는 식물원에 열을 맞춰 심은 여러 나무 중 1개체로 나이와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나무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특히 “한라산에서 발견된 235그루의 자생 왕벚나무 유전자형은 다양한데 단 5그루만 분석했다”며 “2.1% 분석 결과를 일반화한 명백한 오류”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2018년 국립수목원의 발표로 제주 왕벚나무는 국가표준식물목록 자생식물편에서 삭제돼 재배식물편으로 변경되면서 한국 고유종의 지위가 박탈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립수목원은 유전체 해독이라는 과학적 기법으로 한·일 왕벚나무의 조상을 판별, 원산지와 기원을 밝혀내면서 오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일 왕벚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립수목원과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일본 학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제주 왕벚나무가 완전무결한 ‘벚꽃 독립’이 돼야만 한·일 왕벚 전쟁의 확전을 막을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