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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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혈흔이 낭자한 난민이 울부짖는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엔 시신이 널려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목숨을 건 탈출은 쉽지 않았다. 전쟁은 생명과 재산, 불황과 환경 파괴까지 많은 걸 앗아갔다. 힘의 우위로 억지를 부리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재확인 하게 해준 현실이다. 국가나 사업 할 것 없이 똑같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학교를 자주 오갔다. 각종 행사 때마다 지원하다 보니 축구선수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큰아버지처럼 대했다.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선배들 틈에 끼어 후보 선수가 되었다. 내가 선수들에게 베푼 것도 적지 않으니 선배들이 귀여워해 주며 잘 지낼 거라고 믿었다. 5학년이 된 아들이 머뭇거리다 하는 말에 그런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새 학기가 되면서 축구부 주장이 된 선배로부터 1년 동안 정기적으로 돈을 갈취당하고 돈을 가져오지 않은 날엔 갖은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고자질하면 축구를 그만두게 할 거라는 말에 숨겨왔단다. 그간 받은 용돈을 죄다 빼앗김은 물론 그의 요구에 거짓말까지 해가며 돈을 마련해 상납했단다. 며칠 전 너무 큰돈을 요구해서 더는 숨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체육 선생님께 말할까 하다가 그 아이를 직접 만났다. 타이르고 넘어갔으나 믿음이라는 신뢰가 깨어져 속상했다. 아들은 평화를 찾았지만 그렇게 활달하던 아이가 자신감을 적잖이 잃은 모습도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여전히 녀석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 난 아들을 지켜주는 그늘이라 생각했지만 내 주변을 벗어나면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질 못한다는 걸 알게 했다. 아들에겐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강력한 선배라는 무기를 가진 녀석에게 대항하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독립하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핵무기를 지키지 못한 후회를 했지만 늦고 말았다. 수많은 생명이 포탄에 의해 죽음에 이르고 울부짖는 난민을 보고 나서야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는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큰 탄두를 쏘아 올리고 핵무기를 들먹이며 겁박하고 있어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는 점점 더 막강한 무기로 중무장 중인데 우린 각종 제약에 막혀있고 두려움 속에서 할 말도 삼키는 듯하다. 동맹이나 우방이 피를 흘리며 도왔던 옛날과는 다른 현실이 되었다.

주변국의 위협도 불안하다. 독도를 시작으로 야욕을 드러내고, 이어도와 동북공정, 문화마저 빼앗으려는 힘의 우위에 두려운 지 한소리도 못 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우크라이나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견뎌내고 이긴다 해도 전쟁을 겪고 나면 수많은 상흔이 우릴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다. 우크라이나 경우를 보면 우방도 핵무기의 두려움을 마다않고 막대한 부담과 목숨을 걸고 도와줄 것 같지 않다. 스스로 지킬 힘을 잠시라도 소홀하면 우린 모두를 잃게 될지 모른다.

서른 중반이 된 아들이 산업전선에서 뛰고 있다. 수많은 거래처를 관리해야 하고 직원을 거느려야 한다. 무능과 나약함을 보이면 경쟁업체에 먹히고 만다. 지킬 힘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그냥 산업전선이라 했겠나.

‘적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면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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