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만 길인 것은 아니지만, 일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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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봄날 오후 햇살은 눈이 부셨다. 다락방 안까지 깊숙하게 들어와서 더 그랬다. 육군 만기 전역을 하고서 처음 맞는 주말 오후였다. 4주 전 휴가를 나와 복학을 하고, 강의를 듣는 바지런을 떤 직후였다. 민간인이 되어서 처음 맞는 봄날 주말 오후는 나른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눈부신 4월 봄날 햇살이 꼬리를 드리운 책장 한 곳에 눈길이 닿았다. 그동안 누구도 읽지 않은 듯한, 아니 관심조차 두지 않은 듯이 말끔한 책이었다. 봄날 주말 오후 햇살이 등배에 반사된 덕분에 꺼내든 그 책은 도덕경(道德經)이었다.

“도(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눈부시다 못해 나른했던 주말 오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직은 20대 한창때였지만, 군 생활을 경험한 직후였던 탓이리라. 삶의 한 마디를 맺고, 다른 마디를 여는 때였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마디를 열 때마다 덧붙여진 새로운 감정까지도 그때의 일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번역하기 쉽지 않은 도덕경의 첫 마디는 이렇게 들렸다. “당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종교적 신념, 정치적 이상, 사회적 가치는 쉽게 규정할 수 없을뿐더러, 강제하면 안 된다.”라는 금언(金言)은 일종의 경험칙이다. 살아가면서 좌절을 경험한 횟수만큼 공감이 깊어지기 마련이니까.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인다는 완고함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방어기제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하기는 5000자에 불과한 도덕경도 “변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런데도 변함이 없는 길과 이름 이야기로 시작해서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하는 게 도덕경의 묘미다.

상(常)은 ‘변함없이 늘 같은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상도와 상명을 ‘변하지 않는 길’이나 ‘변하지 않는 이름’, 곧, 진리로 번역한다. 그러니 도덕경을 처음 대했을 때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개운치가 못하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최적의 길, 곧 진리가 아니라면 왜, 어떻게 걸어가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이렇게 우리는 확신을 요구한다. 잘못된 길을 택하거나, 중도에 탈락해서 끝에 이르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없는 끝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완고해간다.

도덕경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유가의 경전 『중용』에서는 ‘일용일상(日用日常)의 덕’을 말한다. 특별하지도, 애쓰지 않아도 늘 그런 일상이야말로 위대하다는 역설적인 주장이다. 아직은 성급하다지만 엔데믹, 곧 ‘팬데믹의 끝’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점을 떠올리면 역설도 아니다. 그러니 도덕경의 첫머리를 이렇게 번역하면 어떨까 싶다. “어떤 길도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만 길인 것도, 모두가 같은 길도 아니다.” 인생이라는 길이 위대한 까닭은 지금껏 걸었던 그 누구의 길도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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