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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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윤 수필가

친구는 젖소를 키운다. 나는 종종 친구네 농장에 가서 젖소를 구경했다. 처음에는 젖을 직접 주물러 짜는 방식이었다. 나중에는 젖소들을 차례로 입장시켜 착유기에 끼우면 젖이 저절로 호스를 타고 탱크에까지 저장되는 자동화 방식이 되었다. 젖소들은 대체로 유순했지만 가끔 한두 마리가 우리 밖을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금방 되잡혀 우리로 돌아왔다. 뒤뚱뒤뚱 서툴게 걷는 걸음이 우스꽝스럽게만 보였다. 친구의 설명으로는 젖소가 잘 걷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모든 기능들을 퇴화시키고 젖 만드는 기능만 극대화시킨 탓이란다. 커다란 뱃구레와 핑크빛으로 부푼 유두가 우유 만드는 작은 공장들처럼 보였다.

교미도 제대로 못해 자연 임신의 확률은 희박하단다. 하기야 거의 평생을 암컷들만 모여 사니 무슨 자생적 성욕이 생기기나 하겠나. 친구는 수의사 겸 인공 수정의 기술자다. 인공 수정의 절차는 맨 처음 냉동된 정액을 녹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정자들이 죽기 전에 시간에 맞춰 암컷의 질을 벌려 수정시켜 줘야 한다. 그때 친구의 팔 한쪽이 암소의 질 속으로 거의 다 빨려 들어갔다. 기술의 발휘는 거기서부터다. 손가락으로 잘 더듬어 정확한 지점에 떨구어 줘야 한다. 품종이 좋은 종우의 정액은 값이 비싸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도 성공할 확률은 두세 번에 한 번 꼴이란다.

친구는 긴 여행을 가지 못한다. 하루에 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꼭 젖을 짜주고 사료를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유방염이 와서 탱크의 젖을 다 버리게 된다. 본인 부친의 장례식에도 저녁 젖을 짜주고 나와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우리도 친구의 시간에 맞춰 저녁 시간에 주로 어울렸다. 가끔 밤중에 카드놀이를 하고 있으면 친구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이다. 모처럼 일박이일로 칠선계곡 민박집에서 놀고 있다가도 지프를 타고 한밤에 농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젖소는 출산의 기능마저 퇴화되어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는 새끼마저 혼자 낳을 수 없단다. 잘못하여 시간이 늦어지면 새끼가 산도에 끼어 새끼도 어미도 다 죽고 만단다.

하루는 젖소가 새끼 낳는 걸 구경한 적이 있었다. 어미가 산통을 시작하자 친구가 능숙한 솜씨로 밧줄을 이용하여 어미를 옆으로 눕혔다. 이윽고 엄청난 양수가 터지고 송아지의 앞발굽이 보였다. 친구가 그 발굽을 밧줄로 묶어 끌어 당겼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윈치에 걸어서 끌어 당겼다. 마침내 송아지가 미끈 빠져 나왔다. 어미는 오랫동안 정성껏 젖은 송아지의 온몸을 혀로 핥아 주었다. 송아지는 곧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송아지는 따로 격리될 거라고 한다. 어미는 계속 착유해야 하고 대신 송아지에겐 분유를 타 먹일 거란다. 그러니까 어미가 탯줄을 뒷처리하고 송아지가 마를 때까지 혀로 핥던 그 시간이 그들이 함께 보냈던 유일한 순간이었던 셈이다. 젖소는 그 힘든 산통의 과정 속에서도 신음소리 한 번 크게 내지 않았다. 고통스러운지 시종 큰 눈만 디룩디룩 굴리고 있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앞산 위로 별들이 돋고 있었다. 나는 밤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나는 내 삶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주관하는 온전한 삶을 살아 왔던가. 도대체 이 사회의 어떤 기능을 위하여 이다지도 억압받고 강요된 삶을 살아야 했을까. 바람이 불자 눈앞의 검은 숲이 함께 움직이는 군중이거나 말없는 검은 소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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