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노역의 슬픔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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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수월봉·한장동 자살특공진지
日, 제주도민 강제 동원시켜
영미 연합군 대비 진지 구축
긴 시간 숨어있던 갱도진지
쓰레기 쌓이고 경작지로 쓰여
방치된 전쟁유적 보존 필요성
일제가 파헤쳐 구축한 고산리 한장동 바닷가의 자살특공갱도진지.
일제가 파헤쳐 구축한 고산리 한장동 바닷가의 자살특공갱도진지.

▲‘결7호 작전’과 일제가 파헤친 도처의 갱도진지

결호작전(決号作)이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세운 일본본토 방위작전을 말한다.

패전기운이 짙게 드리우던 1945년 2월, 일본방위총사령관은 영미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7개 지역에서의 육‧해군 결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본토 6개 지역과 일본 이외의 지역으로 제주도가 유일하게 해당되었다.

결7호 작전 대상지역인 제주도에서 방어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이에 따른 여러 예하부대가 편성되어 7만5000여 명의 병력이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결호작전 지역 중에서도 미군의 예상 상륙지점으로 홋카이도(북해도)와 제주도가 유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결1호와 결7호 작전을 보다 강도 높게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는 고산 수월봉 등이 위치한 서부지역을 주진지대로 하여, 해안과 오름 등지를 3단계에 걸쳐 마구 파헤치며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도처에 갱도진지들을 구축해나갔다.

일제가 제주도에 구축한 5대 자살특공진지 중 하나인 수월봉 자살특공진지.
일제가 제주도에 구축한 5대 자살특공진지 중 하나인 수월봉 자살특공진지.

▲일제가 제주도에 구축한 5대 자살특공진지 중 하나인 수월봉 자살특공진지

일제는 미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려 자폭용 고속정 특수부대인 ‘신요오(震洋)’와 자폭용 인간어뢰인 ‘카이텐(回天)’ 특수부대를 1945년 초 편성하였다.

일출봉·서우봉·황우치·송악산·수월봉 해안이 바로 자살특공진지가 구축되었던 현장들이다.

특히 고산 수월봉에는 엉알과 한장동 해안 두 곳에 일제가 파헤친 자폭용 고속정 특공대 지휘소와 특공진지가 있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유명한 수월봉의 동쪽 엉알 절벽(고산리 3763번지)을 파헤쳐 구축한 콘크리트 시설물, 그 시설물이 바로 일제의 자살특공대 지휘소였다.

일제는 18개의 신요오 보관용 격납고를 수월봉 일대에 구축하였다. 수월봉 해안절벽에 있는 갱도진지는 미군 등 연합군의 함정을 목표로 자살공격을 감행하려 일제가 목제고속정을 보관하려 만든 시설이었다.

수월봉 특공기지에는 일본 해군 소속의 자살특공부대인 진해경비부 소속 제120진양대(일명 오노부대)가 배치되었다고 한다.

1945년 3월 편성된 120진양대의 총병력은 191명으로 진양5형 25척을 보유했다. 일제는 진양특공정을 바다로 통하는 갱도 안에 숨겼다가 미군이 나타나면 발진시켰으나 그 성공 정도는 미미했으며, 오히려 일군함이 대거 파괴되었다.

일예로 일본 수송선 2척과 호위함 4척이 비양도 앞바다에 정박하던 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과 미군의 B29 폭격기에 의한 반격으로 격침되었다.

이 배에는 800여 명의 일본 특공대와 많은 군수품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진지구축 작업은 한반도 본토에서 징발된 광부에 의해 굴착되었으며 또한 주민들을 통제한 가운데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전한다.

한장동 바다 표지석.
한장동 바다 표지석.

▲해안도로 아래 방치되듯 감추어진 ‘한장동 일제갱도진지’

수월봉 한장동 갱도진지를 우연히 답사하였다. 고산리 한장동 바닷가에는 일제가 파헤쳐 구축한 자살특공 갱도진지가 방치되듯 숨어 있었다. 20여 년 전 이곳을 탐사했다는 조성신(전 초등교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질토래비 답사팀이 따라나섰다. 긴 세월 방치된 채로 숨어있던 한장동 갱도진지를 바다로 흐르는 물길을 보며 조성신 전 교장은 쉽게 찾아냈다.

수림으로 가려진 갱도진지 입구에 들어선 답사팀은, 물이 들어찬 둔탁한 바닥을 더듬으며 어둠속 갱도를 향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헤드랜턴이 밝혀준 갱도에는 어디선가 유입된 물이 들어차 있었다. 대략 300여 미터 길이의 갱도 안에는 군인들의 사무실 또는 취침용으로 쓰였을 방 형태의 갱도도 여러 곳에 있고, 깍지불 등을 넣었던 홈도 여러 곳 보였다.

두 방향으로 갈리는 중간지점에서는 바다로 나 있는 갱도를 통해 빛이 유입되는 구멍(입구)이 보이고, 특히 지상으로 통하는 갱도에는 온갖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다.

생활용품과 포장지들이 숱하게 쌓여 생활의 변천사를 읽어낼 만큼의 수많은 쓰레기가 응집되어 있었다. 191명의 군인이 주둔했다는 진지치고는 수월봉 엉알 특공진지의 규모가 작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지인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한장동 특공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한장동 바닷가(고산리 3881번지)에 위치한 갱도진지의 출입구는 5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바닷가로 3개와 지상으로 2개의 출입구가 연결되어있는 구조이다.

특히 지상으로 연결된 갱도 입구 주변은 흙으로 메워져 경작지로 쓰이고 있었다. 바닷가로 나 있는 세 개의 출입구 역시 거의 메워져 있어 자세하게 살펴야 보일 정도였다.

엉알 갱도진지에는 일본해군이 주둔한 반면, 한장동 진지에는 일본육군 중에서도 최정예부대인 제111사단이 주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군 배치도인 ‘제58군배비개견도’에는 당산봉과 수월봉 일대에 일본군 진지가 표시되어 있다. 이 갱도가 바로 제58군배비개견도에 보이는 일본군의 전진거점진지였을 것이다.

이곳 바닷가에서 만난 한장동 출신 이동화(1961년생)님은 어린 시절 갱도 안에서 물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최근에는 해안도로가 갱도 위를 지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안전장치와 전쟁유적 설명문은 전무하다.

이렇듯 사암층에 구축한 한장동 갱도진지 전쟁유적은 자동차 통행으로 붕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장동 일제갱도진지는 근대전쟁유적으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기에, 당국은 이곳의 홍보는 물론 안전장치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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