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何如)와 여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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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권력이다. 그래서 권력을 휘둘러 본 사람은 권력의 맛에 빠져 그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권력의 주체를 선거로 국민의 뜻을 물어 선출한다. 그러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승복한다. 민주주의의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국민이 현명하여 올바른 주권을 행사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승자는 패자를 지지한 많은 사람의 뜻을 금방 잊어버리고 그 권력을 독점한다. 안타까운 제도이지만 해결 방법이 없어 그냥 유지한다. ‘삼권분립’이 그 대안이지만 권력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대통령 선거가 엊그제 같더니 이제 지방선거가 뜨겁다. 우리의 대표를 뽑는 것이지만 사실은 막강한 권력자를 뽑는 것이다. 그러기에 투표하기 전 누구에게 권력을 맡길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오늘날까지 장기판에서 전쟁놀이를 할까?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치열한 전쟁, 모자란듯한 유방이 항우를 누르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의 제왕이 된다.

항우와 유방의 소통방법이 하여(何如)와 여하(如何)의 차이다. 순서만 바꾸었을 뿐인데 그 의미하는 소통(疏通, Communication)의 방법은 엄청 다르다. 何如는 ‘어떠냐?’란 뜻이고 如何는 ‘어떠할까, 어찌할까?’이다.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내 생각이 어떠냐?’하고 으스대는 소통 방법(何如)과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如何)의 소통방법을 생각해보면 항우의 何如가 유방의 如何에게 패한 까닭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하여가(何如歌)’가 아니라 ‘여하가(如何歌)’를 불렀으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어느 소통방법을 뽑았을까,

이번 지방선거에는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 것인지 분명해진다. 何如는 오만하고 如何는 겸손하다. 그러나 이를 구별하기는 매우 힘들다. 선거 전에는 다 고개를 푹 숙이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보면 보입니다.’라는 간첩 잡는 표어가 생각난다. 선거 공약이나 토론, 지난 과거의 경력이나 태도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병원에서 푸대접받은 사람이 딸을 ‘의사’ 시키려 하고 법을 몰라 억울함을 당한 사람은 아들을 ‘변호사’ 시키려 하는 소박한 소원이 그럴듯한 세상이다.

평생 검사나 판사, 얼굴 한번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이 많은 사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잘 뽑아야 한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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