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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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 논설위원

지난 13일 숲속은 안개로 가득했다. 안개의 지배권에 들어갔다. 저항 한 번 못하고 순식간에 포위됐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나무도 사라지고 오름도 사라지고 공간도 지워졌다. 눈앞의 사물만 시야에 겨우 들어왔다. 회색 세상이었다.

안개는 물리학적으로 구름과 같다. 지면에 닿은 층운이다. 차가운 대기 중의 공기가 따뜻한 바다나 땅에서 증발하는 수분과 만나 작은 물방울이 생긴다. 특히 밤이나 새벽에 끼는 안개는 바다에서 발생해 바람을 타고 육지로 이동할 때가 많다. 숲속에서는 나뭇잎에서 방출하는 수분이 안개를 만들기도 한다.

안개가 짙은 날에는 만물은 몸을 낮춘다. 신나게 지저귀던 새들의 재잘거림도 잦아든다. 곧게 세웠던 나뭇잎도 대롱대롱 물방울에 이끌려 고개를 숙인다. 가랑비도 소리 없이 내린다. 나뭇가지에 맺힌 이슬방울만 재 무게에 못 이겨 떨어지며 내는 소리뿐이다.

그만큼 안개는 적막의 상징이다. 고요함이 극치다. 더군다나 눈에 익숙했던 공간 환경의 사물을 모두 가려 불확실성을 자아낸다. 그래서 안개는 사람에 따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회색 공간에 갇혀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안개와 같은 기상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햇볕이 비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 불면 산만해진다. 비가 내리면 우울해진다. 눈이 내리면 동심이다. 벼락이나 태풍이 불면 무섭다. 그만큼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날씨와 한 몸이다.

가장 민감한 것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안개는 대표적인 감성 자극인자다. 우리의 내면을 잘 건드린다. 이를 ‘안개의 영혼성’이라고 한다. 이런 성질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B. 친친나트다. 안개값이 최대치에 이르면 영혼이 얼마나 고양되는가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려고 했다.

안개를 고양이 마음에 빗대어 읊은 시인도 있다. 칼 샌드버그다. 그는 시를 통해 ‘안개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굽어보다 결국 자리를 뜬다.’고 했다.

안개를 진공묘유(眞空妙有)에 비유하기도 한다.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다. 즉 비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채워진 것도 아니다. 비어있거나 채워진 채로 고정불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생성과 변화를 겪는다. 안개도 그렇다. 보이는 듯하면서도 가려져 있고 가려진 듯하면서 보인다.

그리고 안개에는 묘한 기운도 서려 있다. 식물이 먼저 알아 반응한다. 안개 기운에 몸을 사렸던 식물은 햇볕이 돌아오면 곧바로 일으킨다. 나뭇잎도 곧게 세운다. 찔레꽃의 하얀빛도 도드라지게 빛난다. 안개 기운의 영향과 햇볕의 에너지가 응축하고 있음이다.

안개 기운은 사람에게도 닿는 듯하다. ‘나를 치유하는 안개’를 쓴 김시화 시인이 떠오른다. ‘밤 안개 소리 없이 자욱이 밀려오면/불면의 밤 지새다 너무나 지쳐버려/가만히 안개 속으로 지친 몸을 넣는다/치유가 불가능한 듯 보이던 몸이지만/안개는 기적처럼 기운을 불어넣고/망가진 고철덩어리를 용광로에 녹인다/안개는 액체로 다시 합친 새 몸에/바람을 불어넣어 형태를 완성한다/눈부신 치유의 힘에 등댓불이 켜진다’

특히 오름왕국 5월은 해무가 잦다. 해무는 바람을 타고 중산간 숲까지 밀려들기도 한다. 음이온이 풍부하고 알파파를 자극한다. 가끔은 숲속을 오감보행하며 안개치유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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