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년 만의 귀향, 세한도(歲寒圖)
178년 만의 귀향, 세한도(歲寒圖)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운진 동화작가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을 뿐인데 권세 있는 사람에게 책을 보내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한 유배객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안동 가문 세도정치가 심해지면서 정쟁에 휘말려 제주에서 84개월이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가시 울타리에 둘러싸여 고립된 나날을 보내면서도 늘 지인들을 고마워하다가 그린 서화(書畫)가 국보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바로 추사 김정희 세한도 이야기이다. 세한의 시기를 버티고 유배 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인들이 보내 준 책들이 있어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그의 말대로 지금도 권세와 이득을 좇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은 달랐다. 아무런 권세도 없고 이득도 줄 수 없는 스승을 잊지 않고 귀한 책들을 보내 준 것이다. 천만리 먼 나라에서 구한 책들을 이상적이 보내 주지 않았더라면 세한도는 아마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오월 초 세한도 귀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국립 제주박물관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서일까?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박물관에는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와 연못 주변엔 봄꽃이 꽃불을 피워 놓고 있었고 야외 전시장엔 벌써 초록이 한창이었다.

상설전시실과 실감 영상실을 거쳐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로 향하였다. 세한도를 만나기 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추사가 느꼈을 음산한 제주 겨울을 표현한 영상에 몰입해 본다. 영상을 보면서 세한 속의 추사가 나인지 세한도를 마주한 내가 추사인지 잠시 호접몽(胡蝶夢)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했다면 너무 과장된 언사일까?

영상에 도취함도 잠시 14m가 넘는 세한도 두루마리 전체가 전시실을 가득 채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추위와 시련까지도 표현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자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했던가? 그렇다. 세한도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백(松柏)과 같이 시련 속에서도 신의를 지킨 제자와 자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178년 만에 귀향이라니 참으로 경이롭다 못해 신비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 안빈낙도와 풍류에는 늘 경외감을 갖게 된다.

요즘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일부 후보들은 권세와 이득을 좇아 감언이설과 위민으로 포장된 공약(空約)을 마구 쏟아낸다. 추사가 환생한다면 이들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유권자를 현혹해 권세를 얻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측은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권세와 이득을 좇지 않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준 자네가 고맙네.”

추사 김정희가 제자를 향해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오늘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