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구술(口述)에 담긴 여성해방과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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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논설위원

입 밖에 내기를 꺼리던 말이 숨통이 트이듯 터져 나오면서 녹음되고, 문자화되면서 역사로 자리 잡아간다. 특히 근현대사의 폭압적 상황을 두려움 없이 뚫고 나온 여성의 구술은 증언이라는 형식으로 문자성(文字性)을 획득하며 미시사(微視史)가 되고 구술문학, 여성해방사로 고양된다. 언제나 승자의 편을 들어온 거시사(巨視史)와 달리 미시사는 “이전의 역사 연구에서는 전혀 주목되지 못했던 과거의 본질적인 여러 현상을 가시화하는”(『미시사와 거시사』, 32쪽.) 형태를 띠면서 여성해방과 관련된다.

5월 28일(토)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4·3문학회’와 ‘재경제주4·3유족청년회’가 주최하는 ‘양경인’의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은행나무, 2022.) ‘출간 기념 북 토크’는 여성의 구술사에 주목한다. 「제주4·3과 여성」을 주제로 ‘김은실’ 교수(이화여대)가 기조 발제를 하고, 「여성해방의 꿈을 꾼 제주4·3운동가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저자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인 그의 책은 제주4·3의 현장에서 여성해방과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웠던 한 여성 운동가와 5년여 동안 만난 여성 구술사다.

구술자인 ‘김진언’ 할머니는 스무 살 무렵 강원도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정도로 강인한 해녀였다. 그녀는 해방이 되자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남로당에 가입해 여맹 활동을 하다 산에 오른다. 토벌대에 의해 4·3 무장대는 흩어지고 그녀는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그러다 6·25가 터지면서 북으로, 다시 남파 간첩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25년 옥살이 후 귀향하여 여생을 마친다.

그의 구술은 세밀하며, 뛰어난 서정성과 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 “눈 위에서는 저승 갈 때 신는 초신, 와라지草鞋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끈을 달아 발등을 매면 아무리 뛰어도 미끄러지지 않았다.”(55쪽.)라며 전염병에 거멓게 타고 고열에 시달리는 산사람들에게 신발을 안겨주는 대목이며, 교도소에서 사상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견디며 늠름하게 싸워나가는 장면들은 가슴을 울린다. 당찬 제주 여성의 품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서사는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의 서사는 여성해방의 꿈과 좌절을 주제화한다. “내가 해방 후 적극적으로 활동에 앞장선 것은 ‘일부일처제’를 실시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것이 제일 내 원이고 한이었다. 우리 대에는 울고 웃는 사람이 있지만 후세에는 없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144쪽.)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런데 남녀평등을 말하던 남로당에서도 여성은 “거의 당을 위한 심부름꾼 역할”(44쪽.)이었으며, “전쟁이 끝나면 부자와 가난이 없는, 남녀차별이 없는 평등사회가 과연 올 건가…….”(89쪽.)라고 회의하며 끊임없이 여성해방의 길을 묻는다.

2부에 덧붙인 박선애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여성해방을 하려고 보니깐 여성해방 전에 조국이 통일되어야 되겠다,…(중략)…나라가 없으면 여성의 권리도 보장될 수 없고 우리 여성들이 더 학대받고 억압당한다.”(176쪽.)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성해방과 통일운동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경인 작가가 5년 동안이나 할머니의 구술을 채록한 기록은 4·3의 미시사를 이루며, 여성해방의 역사를 담아내는 구술사이자 구술문학으로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토요일 북 토크가 기다려진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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