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에 휘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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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이번 달 초에 한 모임이 주최한 봄나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26명이 출발지에 모여 오랜만에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자가용에 분승하여 목적지로 달렸다. 화창한 날씨에 다들 밝은 표정이다. 얼마 후 가시리에 있는 유채꽃프라자 근처에 집결하자 일정이 안내되었다. 취향에 따라 고사리를 꺾든지 둘레길을 걷든지 아니면 오름을 오르라고 했다.

고사리를 꺾겠다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따라비오름을 오르겠다고 했다. 나도 그쪽을 택했다. 이전에 두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나는 길치라 일행의 중간에 끼는 게 안심된다. 갑마장 잣성길을 따라 삼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걸었다. 소는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군데군데 질퍽한 소똥이 똬리를 틀고,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듯했다.

완만한 등성일 오르는 데도 꽤 힘에 부친다. 안간힘으로 헉헉거림을 누르며 일행과 보폭을 유지했으니 연골주사 맞은 무릎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중간에 한 번 쉬고 따라비오름 정상에 올라섰다. 세 개의 굼부리와 여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곡선미는 가히 일품이다.

사방을 둘러보며 자연의 숨결을 들이켰다. 이내 마음의 찌꺼기들이 사라졌다. 사는 게 뭐라고 북적이는 도심의 악다구니와 소음들에 갇혀 허우적거리는가. 크고 작은 걱정과 불만을 둘러매고 다니는가. 이어지는 자문이 나를 겸손의 티끌로 이끌었다.

먹거리를 준비해온 회원들이 있었다. 결 고운 마음에 감사하며 삶은 달걀이며 귤과 초콜릿 그리고 커피까지 즐기노라니 약속된 시간에 돌아가기가 어려워졌다. 다들 속보로 걸음을 재촉했다. 시나브로 나는 맨 꽁무니에 뒤처져 온 힘을 기울였으나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저들은 어디에 힘을 비축했다가 그리도 빨리 걷는지. 6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일행 중에 중간쯤 나이인데 나만 이렇게 비실대다니.

체중이 문제일 게다. 겉보기에 그리 살찐 편은 아니지만, 체력도 시들하니 당연한 결과일 테다. 3kg만 줄이면 뛰어다니고 5kg만 빼면 날아다닐 것 같은데 노력해도 잘 안된다. 가짜 배고픔에 휘둘리는 탓이다. 아무거나 먹고 싶으면 진짜 배고픔이고 특정한 것을 먹고 싶으면 가짜 배고픔이라고 한다. 식사 중간에 뭘 먹고 싶어도 가짜 배고픔이란다. 식사 때 밥은 조금밖에 안 먹는데 주전부리가 주범이다. 과일류나 과자류 심지어 빵들도 눈에 띄면 입에 넣기 일쑤다.

가짜 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오래전 재직하는 학교로 한 행상이 바둑판을 팔러 왔었다. 알아주는 오동나무 바둑판이라 했다. 반지르르한 겉모습과 묵직한 몸통에 반해 내 형편에 큰돈 주고 집으로 모셨다. 2년쯤 지나니 정체가 드러났다. 시멘트 덩이 위에 나무껍질을 여러 겹 덧붙인 가짜의 끝판왕이었다. 나는 투시력이 없어 가짜 상품에 무시로 속아 넘어간다. 가짜 건강식품, 한 달 만에 멈춰버리는 시계, 비바람에 부서지는 사기 화분, 검게 물들인 참깨….

6월 1일 지방선거가 코앞인데, 내겐 독심술이 미미해 걱정이다. 후보자마다 진짜라며 방방 불어댄다. 금세 정책이 실현되면 지상 낙원에 살 수 있을 것 같다. 위민을 가장한 이기의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살펴야겠다. 잡초 뽑아내듯, 진짜보다 더 빛나 보이는 가짜 능력과 인품을 가려야겠다.

제대로 볼 때 새로운 길이 열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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