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사랑과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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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 논설위원

5월은 신록의 계절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이따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감동을 줍니다.

어느 날 젊은 남녀는 여러 사람의 축복 속에 간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한 가정의 부부로 새 출발을 합니다. 그새 오랜 세월이 흐릅니다. 그 무렵,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충격적인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들이 사는 작은 집에 갑자기 불이 났지요. 그로 인해 아내는 실명하게 됩니다. 가구는 남아 있었으나 가장 소중한 눈을 잃어버렸으니 살길이 암담해졌습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 갈 좋은 추억을 더 이상 아내는 볼 수 없게 됐으니까요. 그 뒤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을 보살핍니다. 앞을 볼 수 없기에 혼자 몸을 움직임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아내가 짜증을 부리고 화를 냈어도 남편은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 줍니다. 남편은 즉시 아내를 불 속에서 구해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합니다.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깁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만큼 적응해 갑니다. 그때야 남편의 배려와 사랑의 고마움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저녁노을의 한 풍경이 되듯 편안한 나이가 돼갑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얼굴에 서서히 주름이 늘어 갑니다. 아름다웠던 아내의 얼굴에도 나무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가 나타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잡혀갑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어쩐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세상의 빛을 잃은 지 수십 년이 됐으니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남편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받아야 합니다. 그는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나이 들면서 그들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이 어느 날 병원을 찾아 종합 검진을 받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 많이 슬퍼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나 주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기의 각막을 아내에게 내주기로 다짐합니다. 비록 자기의 눈도 희미하게 보이지만 내가 보던 눈으로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아내는 그의 유언에 따라 각막을 이식받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바닥에 남편의 편지 한 통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줄 수도 있었는데.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요.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어요. 오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겠지요. 나의 마지막 변해 버린 모습을, 젊을 때 환한 미소에 관해서. 당신이 눈을 잃었을 때,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어요.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화상에 흉한 모습으로, 이제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내 미소는 보여 주지 못하지만 늘 내 기억을 하며 살아가세요.” 아내는 말합니다. “난 알아요. 당신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했다는 것을, 곁에서 잠자는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사랑과 배려 덕분에 당신의 눈으로 밝은 세상을 보니 무척 아름답게 보여요.”

며칠 뒤, 아내는 남편의 뒤를 따라 이승을 떠납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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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자 2022-05-26 09:35:04
내용이 너무슬프고 감동적이예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두리파파 2022-05-26 09:29:24
너무 감동적입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항상 가슴에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