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깜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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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눈 닿는 곳, 신록은 유월의 햇살만큼이나 쨍하니 부시다. 올여름, 유난히 덥겠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계절의 막간에서 놀던 시선을 거두었다. 탁상용 달력을 넘기려던 엊그제. 가족의 달이라며 특별한 날에 덧붙여 써놓은 일정들이 빼곡히 들앉았다. 분주히 움직였던 시간을 소환이라도 할 듯 나열된 숫자의 여백 사이로 바빴던 날의 이력을 서로 먼저 말하겠노라 글자들은 아우성이다.

소속된 한 단체에서 애월에 위치한 제주안전체험관엘 봉사 차 연례행사로 간다. 안전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리 예약 받고 체험교육을 하는 교육장이다. 우리 조는 안전체험관 입구 안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대여해 주고 또, 그것들을 반납하면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아동용 게임용품들이며 가족끼리 나들이 삼아 그곳을 찾은 이용객들에게 야외용 매트가 주된 대여 품목이었다.

얼마 전, 어린이날 행사 시 나눠주다 남은 비눗방울 놀이 용품을 입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소진 때까지 나눠주는 일도 곁가지로 맡았다. 역시 뭔가를 준다는 것은, 주는 손이나 받는 손 모두가 즐겁고 마음도 덩달아 가볍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손잡이가 과일 모양인 것도 있고, 고만고만한 크기의 손에 쏙 들어감직한 동물 모양의 놀이용품은 보기만 해도 깜찍해 그 또래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성질 급한 한 아이는 받자마자 놀이기구를 빼서 휘두르는 바람에 무지갯빛 비눗방울 수십 개가 전시관 안에서 동글동글 날아다녔다. 생각지 않은 행동에 놀이기구 사용법이며, 그것이 꽤 흥미 있는 놀이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봉사를 마무리하려고 준비할 때였다. 하나를 쥐고도 다른 모양의 것도 갖겠다고 몇몇 아이들은 같이 온 부모에게 떼쓰느라 야단이다. 놀이는 한 가진데 요렇게 저렇게 만들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문제였다. 한 아이는 막무가내로 떼쓰다 결국, 생난리로 우는 통에 데리고 나온 보호자도, 요구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입장도 난감했다.

건물 안에서 우는 바람에 소리는 공명으로 더 커지고 주변의 시선들은 집중되었다. 얼떨결에 보호자께 눈치로 밖에 나가 있도록 했다. 잠시 후,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하나를 갖고 나가 몰래 쥐어줬다. 그렁그렁하던 아이 얼굴 위, 눈가엔 눈물 대신 순간 웃음이 넘쳤다. 이렇게 감정이 솔직하니 아이인 게다.

금액으로 치자면 이천 원 정도나 될까. 거창하게 양심 운운하긴 좀 그렇지만, 몰래한 행동이 초롱초롱한 다른 눈빛에 걸려 뭇매 맞는 기분이었다. 생각에 따라 별것 아니나, 다수의 사람과 차별된 행동에 주고도 편치 않았다. 마음의 기울기 따라 행동 후 느껴야 했던 무게가 물건의 가치보다 훨씬 컸다. 부모 입장도 아마 돈 내고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아일 울리느니 열 번도 더 지불했으리라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미덥지 않은 행동에 대한 조심스러움으로 주위를 살폈다.


주차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왁자하게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잔디 위에서 아이들 걸음과 손동작에 따라 높이 나는 수백 개의 비눗방울. 또 그것을 잡으려 쫒아가는 동작들 속으로 천진함도 같이 뜀박질이다. 비눗방울 날리며 좋아서 쏟는 웃음으로 교육장 마당은 소리로 흥건하고, 무지갯빛 크고 작은 방울들도 아이들 꿈의 크기처럼 떼 지어 바람결 쫒느라 바쁘다. 얼마 전 일이 삼삼하게 피어오르며 5월 속, 한 날의 기억이 다시 못 올 시간으로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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