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편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논설위원

그리운 사람에게 자신의 필치로 정성을 담아 사연을 적어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거기에는 희망과 망설임, 긴장감과 기대감, 안도감과 고마움이 글자마다 아로새겨진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손끝에 힘을 모아 마치 결단을 내리듯 자신의 마음을 적었던 편지에 대해 기억할 것이다.

편지(片紙, 便紙)는 어떤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남에게 보내는 글인데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수단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황토색 큰 가죽가방을 자전거 앞에 매달고 가가호호 편지를 전달하던 우체부가 있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아들딸들의 편지를 학수고대하던 노부모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편지는 마음 졸임이고 안녕을 확인했던 기다림의 대명사였다. 베트남으로 파병 간 아들에게서 온 편지나 군대 간 아들에게서 오는 편지는 어떤 소식보다도 기다려지던 절실한 것으로, 굴곡 많던 우리 현대사의 희비극을 담았던 기록이기도 하다.

요즘 편지를 쓰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편지 대신 이메일, 메신저, SNS, 카톡 문자로 소식이 오간다. 매우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편지처럼 정성스럽게 쓰고 밀봉하여 우체통에 넣는 긴장감은 사라졌다. 간단한 만큼 마음에 새기고 숙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쉽게 쓰고 보내고, 지우는 것도 빠르다. 손 편지가 불편하긴 하지만 지인에게 보낸 편지는 지울 수 없는 기록으로 남겨져서 지난날의 감정과 상황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옛날 인편(人便)으로만 가능했던 시대에는 편지를 간찰(簡札), 서찰(書札) 등으로 불렀다. 간찰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아름다운 내면의 울림과 긴장감을 담고 있다. 제주는 유배지였던 만큼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간찰을 비롯하여 절절한 사연들이 해협을 오가기도 했다. 섬 안에서는 숙종 때 유배인 오시복과 제주목사 이형상이 간찰을 통해서 서로 간의 근황과 지방행정의 조언을 주고받았다.

편지로 유명한 화가 중에는 이중섭이 있다. 이중섭의 인생에서 편지가 없었다면 그의 생애는 대중들에게 절절히 회자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중섭이 살았던 시대 상황에서는 떨어져 있는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편지가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이중섭의 편지는 상당수에 달한다. 이중섭이 직접 쓴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편지는 화가 이중섭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이중섭의 독특한 편지의 필적과 스타일은 화가 이중섭의 미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자신의 근황과 함께 편지에 그림을 그려 보낸 것인데, 편지에 그려진 그림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중섭은 작품을 그리듯 정성스럽게 편지를 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디자인이 돋보이는 편지의 구성은 봉투의 주소 표기라든가 시선을 압도하는 필적과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중섭에게 편지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대변해 주는 것이고, 가족에게 보낸 이중섭의 애틋하고 절실한 편지 내용은 지금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현재 이중섭미술관에서는 가족에게 보낸 이중섭의 편지화를 비롯하여 일본 유학 시절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가족 사랑을 그린 은지화를 전시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편지 속에 담긴 청년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을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편지는 마음의 울림으로 남는 가장 인간적인 고백이 아닌가 싶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