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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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 논설위원

이제 그만 멈춰야 할까, 다시 달려야 할까. 요즘, 자주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멈출 때인지 달려야 할 때인지, 바로 때를 묻는 말이다. 같은 또래 다른 이들은 이 물음에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다. 때마침 찾아온 코로나19로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공공연한 허락을 받고 멈춰서 있지만, 마음은 늘 정답 찾기에 분주하다. 우리에게 선택의 순간은 이처럼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비슷한 선택지가 여럿 있어 고르기 힘들 때도 있지만,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어렵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나머지 하나는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겐 아주 오래된 아침 루틴이 있는데, 하루를 커피 한잔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한잔의 커피를 얻기 위해 매번 오래된 동 재질의 핸드밀을 돌려댄다. 전동 그라인더가 있어도 굳이 핸드밀로 원두를 갈아내는 가장 큰 이유는 팔에 적당한 힘을 주고 손잡이를 몇 바퀴 돌리고 나면 멍했던 정신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커피 내리는 물 온도를 맞추려면 잠깐의 기다림도 필요하다. 전쟁 같은 출근 시간을 앞두고도 매번 지켜왔던 노동과 기다림의 시간. 이렇게 얻은 커피 한잔은 하루를 버티는 아침밥이자 비타민이었다.

나는 이렇게 매일 지켜왔던 아침 루틴을 깨보려 한다. 이유라고 할 것도 없지만, 굳이 하나를 대라면 루틴이란 게 좋은 습관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쯤으로 해둔다. 이왕이면 아집이 자리 잡지 못하게 극과 극의 선택을 해보자. 햇살 따사로운 오늘의 시작은 커피가 아닌 녹차로.

제주에는 많은 녹차밭이 있다. 멀리 떠나고 싶은 욕심에 거문오름과 접해 있는, 한 다원으로 정했다. 제주에 이런 풍광이 있을까 싶다. 드넓은 녹차 밭이 통째로 거문오름 품 안에 쏙 들어가 앉아있다. 맨 앞이 키 작은 녹차 나무, 그 주변을 이름 모를 나무들이, 그리고 거문오름이 이 모두를 품고 있다. 노랑, 연두, 비리디언, 인디고색 물감들이 서로 섞여 다채로운 색의 향연으로 피어오른다. 다원 안 유리문 틀 안에 들어온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오감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겐 단연코 시각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먼저 눈으로 판별한다. 맨 먼저 내 눈에 담긴 이곳 풍광이, 녹차 맛도 기대하게 만든다. 차향이 좋다. 차 맛도 기대 이상이다. 좋은 맛만큼이나 멈출까, 달릴까로 분주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 가끔은 아침의 시작을 카페인이 적고 구수한 호지차로 시작해야겠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혹시 쌉싸름한 말차 애호가가 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좋은 면도 있다. 굳이 하나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젊은 날, 이해할 수 없었던 황희 정승의 말이 떠올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집 마당에서 싸우고 있는 두 아이가 서로 자신이 옳다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고 황희 정승이 ‘네 말도 옳다. 그래 네 말도 옳구나’라고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한마디 한다. ‘아니 이 아이가 옳든지 저 아이가 옳든지 해야지, 무슨 판결이 그러냐’고. 그러자 황희 정승은 ‘아이고, 부인 말도 옳소’라고 했다는 일화. 세상사 옳고 그름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틀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생각의 다름에서 빚어지는 편견과 오해들.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을 떠올리며, 차 한잔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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